21대 국회의원 사전투표 마지막 날인 11일 시민들이 종로구 사전투표소 안내판 옆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총선을 코앞에 둔 범여권 지지자들의 표심은 어디로 흐르고 있을까. 지난해 10월 <한겨레>는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의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 뒤 석달 가까이 이어진 ‘조국 정국’을 놓고, 시민들의 의견을 듣는 ‘표적집단 심층좌담’(FGD)을 진행한 바 있다. 참가자들은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것은 같았으나, 검찰을 향한 분노와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실망 등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다. 그 뒤로 반년 가까이 지나 어느덧 총선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12일 <한겨레>는 지난해 ‘표적집단 심층좌담’에 참여한 6명 중 5명의 속마음을 다시 들었다. 이들은 모두 2016년 겨울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위해 서울 광화문광장에 섰던 이들이다. 50대는 ‘오’, ‘20’대는 ‘이’로 이름 첫머리를 붙였고 검찰개혁을 촉구하고 조 전 장관을 옹호하는 서초동 집회에 참여한 이는 ‘서’, 나가지 않은 이는 ‘무’로 표기했으며 성별을 구분해 표시(남·여)했다.
조국 전 장관 임명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오무남(55)은 사전투표에서 지역구는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는 정의당을 찍었다. 그는 “미래통합당에 이어 더불어민주당까지 위성정당을 만들었을 때 투표를 아예 안 하려고 했는데 차명진 통합당 후보의 ‘세월호 망언’을 듣고선 투표소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학교 다닐 때 데모하다가 붙잡힌 기억 때문에 검찰에 기본적인 거부감이 있지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정의와 평등, 공정이라는 가치를 훼손했다고 생각했던 그의 선택은 분산 투표였다. 오무남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1987년 이후 민주당만 내리 찍었다. 2017년 대선 때 처음으로 정의당 후보(심상정)를 찍긴 했으나, 그건 문재인 대통령이 가뿐히 당선될 것이라고 봐서 전략투표를 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진심으로 정의당을 찍었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이 미래통합당의 승리를 막기 위해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을 만든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해를 한다고 해서 마음에 안 드는데 더불어시민당을 찍을 순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더불어시민당도 미래한국당도 기득권을 지키려는 거대 양당의 이기심에 다름 아니다. 우리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정의당을 찍었다”며 “정의당이 비현실적이고 급진적인 정책을 내놓지만 그 지향성엔 동의한다”고 말했다.
조 전 장관을 검찰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며 지난 서초동 촛불집회에 가장 뜨거운 마음으로 나섰던 오서남(55)의 생각은 달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 검찰과 언론의 광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사전투표에서 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을 찍었다. 오서남은 “고민을 하다가 여당이 과반을 확보해야 문재인 대통령의 후반기 국정운영이 순조로울 거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비례대표는 늘 정의당을 찍었는데 이번에는 정의당이 차려준 밥상도 걷어찼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정의당이 도덕주의에 갇히지 않고 민주당과 함께 비례정당을 만드는 데 참여하는 게 옳았다고 생각했다. 열린민주당을 선택해야 하느냐는 고민도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이 더불어시민당에서 11번부터 비례대표를 낸 것이 아니냐. 파격적인 양보인데 그 양보가 마음에 들었다”며 “(더불어시민당 앞번호 후보가) 국회로 가서 미완의 선거법도 고치고 검찰도 개혁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30대 삼서남(30) 역시 지역구 1번(더불어민주당)과 5번(더불어시민당)을 선택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입장이었지만, 그 개인 때문에 민주당에 대한 신뢰나 지지도가 바뀌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비례정당 난립에 대한 그의 입장은 부정적이었다. 그는 “낯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만 정치라는 게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당한 건 아니지만 민주당 외에 더 나은 대안이 없다고 본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나은 선택을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른바 ‘엔(n)번방 사건’이 표심을 굳히게 한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한겨레> 표적집단 심층좌담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비판적인 시각을 나타냈던 이무여(26)는 이번 비례대표 투표에서 정의당을 찍기로 했다. 그는 “조국 사태 때 실망을 하긴 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을 나쁘게 생각하진 않는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를 진정시킨 것은 한 나라의 리더로 칭찬할 지점이라고 본다. 민주당이 비례당으로 더불어시민당을 낸 것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엔번방 사건이다. 엔번방과 관련해 제대로 입법을 하겠다는 것은 정의당뿐이기 때문에 정의당을 찍으려고 한다”고 잘라 말했다. 열린민주당에 대해서는 “계파 싸움을 드러낸 정당으로 호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평가했다. 이무여는 지역구 투표와 관련해 “우리 지역구의 미래통합당 후보는 공약에 경쟁력이 있는데, 민주당 후보는 문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만 내세우고 있다. 문 대통령을 좋아하지만 내세울 것이 저것뿐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해 표적집단 심층좌담에서 문재인 정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서초동 집회에 나갔다고 했던 사서남(43)은 지역구는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찍기로 오래전에 결정했지만, 비례대표 투표는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그는 “선거 공보물을 봐도 더불어시민당 후보들이 누군지 진짜 잘 모르겠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가 계속 더불어시민당을 찍어야 한다고 하니까 더불어시민당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마음 한편에는 열린민주당도 있다. 친문재인 색채가 강하고 역량 있는 인물들이 국회에 들어가 더 강하게 보수야당과 싸워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사서남은 “나중엔 열린민주당 역시 민주당에 합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열린민주당을 찍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서영지 김원철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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