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아현역 사거리 근처에서 신지예 서울 서대문갑 무소속 후보가 선거벽보 훼손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4·15 총선에 출마한 20~30대 여성 후보들의 선거벽보가 훼손되고 유세 도중 이유 없이 폭언을 듣거나 물리적 위협을 받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13일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전날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에 게시된 신지예(30) 무소속 후보(서대문갑)의 벽보 양쪽 눈 부분이 라이터 불에 그을리는 등 심하게 훼손돼 수사에 나섰다고 밝혔다. 경찰은 훼손된 벽보를 회수하고 인근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입수해 용의자를 쫓고 있다.
‘페미니스트’로 활동한 신 후보의 선거 홍보물이 훼손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 ‘성폭력·성차별 없는 서울’ 공약을 내세우며 녹색당 후보로 출마했을 때도 벽보를 담뱃불로 태우는 등 30여곳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신 후보는 이날 서울 지하철 2호선 아현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여성 후보의 얼굴을 훼손하는 건 그 자체로 많은 여성을 불안하게 만드는 일”이라며 “(벽보 훼손은) 여성의 안전을 위협하는 협박이자 페미니즘을 외치는 목소리를 탄압하는 혐오 범죄”라고 말했다.
‘페미니스트 정치’를 표방하고 나선 다른 후보들도 악의적인 방해에 시달리고 있다. 신민주(26) 기본소득당 후보(은평을)의 벽보도 지난 7일 사진 속 얼굴이 칼로 그어진 채 발견돼 서울 은평경찰서가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2일엔 이지원(27) 여성의당 비례대표 후보가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앞에서 유세를 하던 중 뒤쪽에서 돌멩이가 날아와 유세를 돕던 당원이 맞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사건은 마포경찰서가 수사 중이다.
여성들은 이런 폭력을 막기 위해 여성혐오에 더 강하게 맞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김명주(22)씨는 “남성 후보는 막말을 해도 제지받지 않는 반면 여성 후보들은 선거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혐오와 마주하게 된다”며 “국회가 바뀌지 않는 한 여성이 정치에 나서는 일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에 사는 김예나(26)씨도 “뉴스를 접하고 두려운 마음이 드는 동시에 여성혐오가 이토록 만연해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됐다”며 “사전투표를 할 때 이런 현실을 바꿔나갈 수 있는 정치인을 뽑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박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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