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15일 서울 종로구 가회동주민센터에 마련된 투표소의 모습. 강재구 기자
이재훈(42)씨는 15일 낮 12시5분께 21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를 위해 서울 종로구 가회동 주민센터를 찾았다. 마스크를 낀 이씨는 투표소 입구에서 손목에 비접촉식 체온계로 발열 체크를 한 뒤 선거 사무원이 나눠주는 비닐장갑을 꼈다. 기표소가 마련된 지하 1층으로 향하면서 바닥에 붙은 흰 대기선에 맞춰 줄을 섰는데, 대기선에는 앞뒤 사람과의 거리를 1m 이상을 유지하라고 적혀 있었다. 신분 확인을 마치고 기표소 안으로 들어가 48.1㎝ 길이의 비례대표 투표지에 도장을 찍고 나니 비닐장갑을 낀 손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이씨는 “(지난 선거에 견줘서) 모든 게 다 불편하긴 했지만, 그래도 투표는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왔다”고 말했다.
4년 만에 돌아온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전례 없는 낯선 풍경들이 펼쳐졌다. 지난 1월부터 3개월째 계속된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치러진 선거여서,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는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투표소 입장 전후로 비닐장갑을 끼고 벗기 전 유권자들은 투표소가 마련해둔 손소독제를 발랐다. 최해선(45)씨는 “마스크나 비닐장갑을 착용하고 투표를 하는 게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면서도 “하지만 비닐 소비로 인해 환경오염이 걱정되어서, 장갑을 한쪽씩만 줘도 괜찮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장갑을 끼고 투표하는 게 쉽지 않았다는 유권자들도 있었다. 박순자(69)씨는 “(비닐장갑을 낀 채) 도장을 찍는데 한번에 잘 안 찍혀서 종이를 다시 달라고 했지만 안내원이 안 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그냥 냈다”고 했다. 손자와 함께 투표소를 찾은 이아무개(75)씨는 “손자가 손이 불편해 장갑을 직접 끼워줬다”고 말했다.
15일 21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소인 서울 종로구 가회동주민센터 바닥에 부착된 흰 대기선. 배지현 기자
방역 당국이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 ‘신체 부위 인증사진 삼가 방침’을 밝힘에 따라 현장에선 최근 선거들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투표 인증사진으로 주목받았던 ‘손등에 기표도장’을 찍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유권자들은 투표소 밖에 설치된 안내표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거로 인증사진을 대신했다. 아내와 함께 나온 박인규(37)씨는 “국민의 권리로 투표하러 나왔다”며 이같은 방법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코로나19에도 유권자들이 국회에 바라는 저마다의 열망은 컸다. 홀로 투표소를 찾은 조은정(26)씨는 “코로나19가 터지고 국가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면서 정치에 관심이 많아졌다”며 “정부가 국민을 위해 잘 대응하고 있는 것 같아 힘을 보태주려고 투표했다”고 말했다. 처음 투표를 했다고 밝힌 임아무개(21)씨는 “21대 국회가 국민의 경제생활에 조금 더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가격리자 투표는 선거를 마친 오후 6시 이후에 진행됐다. 이날 서울 종로구 가회동 제1투표소를 찾은 자가격리자는 3명이었다. 이들은 오후 5시45분께 투표소에 마스크를 쓴 채로 도착해 투표소 옆 임시 대기소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오후 6시께 일반 유권자들의 투표가 끝나자 자가격리자들은 일반 유권자가 투표한 지하 1층 기표소와 별도로 마련된 야외 투표소에서 방역복을 입은 선거사무원의 안내에 따라 투표했다. 자가격리자들은 조용히 투표용지를 봉투에 넣어 사무원에 제출한 뒤 투표소를 떠났다.
코로나19로 자가격리 중인 5만9918명 중 1만3642명(22.8%)이 투표참가를 신청했고 이들처럼 일반 유권자의 투표가 끝난 뒤 투표했다. 자가격리자 중 발열이나 기침 증상이 없는 경우에 한해 이날 오후 5시20분부터 7시까지 외출이 허용됐다.
일부 투표소에선 소란도 발생하기도 했다. 경기 김포에선 이날 오전 7시께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한 40대 여성이 발열 체크에 응하지 않아 투표소 입장을 제지당하자 고성을 지르고 소란을 피웠다. 비슷한 시각 서울 성북구의 한 투표소에선 술에 취한 60대 남성이 지정되지 않은 투표소에서 “왜 투표를 왜 못 하게 하느냐”며 난동을 피워 경찰에 연행됐다. 용산구의 한 투표소에서도 발열 체크에 불만을 품고 투표용지를 훼손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관악구에선 비닐장갑 착용에 불만을 제기하며 소란을 피우고 투표용지를 훼손한 사건도 발생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이날 오후 2시30분 현재 서울에서 투표 용지 훼손 사건이 3건, 소란 행위가 2건 발생해 현장검거 등의 조처를 했다”고 밝혔다.
배지현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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