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4일 이후 서울 이태원, 논현동 일대 방문자는 증상이 없어도 익명검사가 가능하오니 외출을 자제하고 보건소로 문의 바랍니다.’
경기도 김포에 사는 이집트인 자이드(가명·34)는 지난 13일 저녁 6시께 재난문자를 받았다. 한글로 적힌 메시지였다. 한글을 모르는 자이드는 문자 내용을 복사해 번역기에 돌려보려고 했지만 내용이 복사되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차례씩 재난문자가 들어오지만 그는 내용을 이해할 수 없으니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홀로 방역’에 나서는 수밖에 없다.
외국인이 많이 모이는 서울 이태원발 코로나19 재확산 때문에 외국인들에게 곧바로 재난 상황이 공유돼야 하지만 재난문자는 외국어로 지원되지 않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재난문자의 내용은 복사할 수 없다. 국내 재난문자 전송 방식은 ‘재난문자에 대한 회신, 복사 등의 기능을 지원하면 안 된다’는 국제표준기술 규격을 따르고 있는데, 반드시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 현재 삼성전자나 애플의 휴대전화는 복사 기능이 없지만 엘지전자 휴대전화에서는 복사가 가능하다. 엘지전자 쪽은 “복사 기능 제한이 금지조항은 아니라서 고객 편의성 차원에서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삼성이나 애플 휴대전화를 쓰는,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은 문자가 와도 이해할 수 없다. 행정안전부가 외국인 전용 재난정보 안내 애플리케이션(앱) ‘이머전시 레디’를 통해 영어와 중국어로 재난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만, 홍보가 부족할뿐더러 영어나 중국어만 제공되니 다른 언어를 쓰는 외국인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이날 현재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이 앱을 내려받은 수는 1만건 이상이다. 국내 체류 외국인이 200만명 이상임을 고려하면 턱없이 적다. 원옥금 이주민센터 동행 대표는 “재난문자 언어를 다양화하고 앱을 홍보하는 등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재난문자 내용을 일본어로도 번역해 제공하는 방안은 검토 중이다. 이머전시 레디 앱도 한국관광공사 등과 협력해 더 홍보하겠다”고 답했다.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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