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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하늘감옥’서 내려온 김용희씨, 지상 첫날 전태일 열사 묘역 찾은 이유

등록 2020-05-30 19:05수정 2020-05-31 20:57

[삼성 해고 노동자 김용희씨 인터뷰]
“큰 버팀목이 된 건 동료들…
농성장 찾아 순회 연대 투쟁 벌이며 힘 보탤 것”
삼성 해고 노동자 김용희씨가 30일 오후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에 있는 전태일 열사 묘역에 헌화하고 있다. 강재구 기자
삼성 해고 노동자 김용희씨가 30일 오후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에 있는 전태일 열사 묘역에 헌화하고 있다. 강재구 기자

그의 이마엔 더 이상 ‘사생결단’이라고 적힌 머리띠가 매여있지 않았다. 손에는 삼성을 규탄하기 위에 355일 동안 집었던 마이크 대신 국화꽃 한 송이를 들려 있었다. 국화꽃은 50년 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묘역 앞에 가지런히 놓였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삼성사옥 앞 철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여온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62)씨가 지상에 발을 디딘 지 하루만인 30일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 전태일 열사 묘역을 찾았다.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하늘감옥’에 갇혀 있던 그가 고공농성을 마친 뒤 가장 먼저 이곳을 찾은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그는 고공농성에 대해 “죽음을 두고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만큼 외롭고도 힘겨운 싸움이었다. “특히 공황장애를 느낄 땐 견디기 힘들었어요. 뛰어내리면 고통이 사라질까 생각하기도 했지요.” 그렇게 극단적인 생각을 떠올릴 때마다 그를 다잡아준 게 바로 전태열 열사의 평전이었다. “가장 어려울 때마다 전태일 열사의 책을 봤고, 그 속에서 나를 찾았습니다. 전태일 열사가 작업 현장을 고뇌하는 모습들이 많은 힘이 됐습니다. 그래서 철탑을 내려오면 여기부터 찾으려 했어요.” 전태일 열사 묘역 앞에서 <한겨레>와 만난 김씨가 이렇게 말했다.

전태일 열사만이 아니었다. 그가 오랜 투쟁을 견뎌낼 수 있었던 건 김씨의 투쟁에 손길을 내밀어 준 수많은 연대자들 덕분이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버팀목이 된 건 동료들이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감사하다”며 “내면의 갈등으로 뛰어내려 노동자들이 패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견뎌냈다)”고 말했다.

삼성항공에서 노조를 만들려다 해고돼 복직을 요구하며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 앞 교통 폐회로텔레비전(CCTV) 철탑 위에서 355일 동안 고공노성을 이어 온 김용희씨가 29일 오후 삼성과 합의문을 작성한 뒤 농성을 접고 지상에 내려와 도와주신 분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삼성항공에서 노조를 만들려다 해고돼 복직을 요구하며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 앞 교통 폐회로텔레비전(CCTV) 철탑 위에서 355일 동안 고공노성을 이어 온 김용희씨가 29일 오후 삼성과 합의문을 작성한 뒤 농성을 접고 지상에 내려와 도와주신 분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5년 동안의 복직 투쟁, 그리고 355일 동안 25m 높이 철탑 위에서의 고공 농성. 그 힘겨운 투쟁 끝에 삼성은 김씨에게 공식 사과했고, 보상을 약속했다. “저 혼자만의 싸움이었다면 백전백패였을 것입니다. 많은 시민과 노동자들의 연대로 이길 수 있었습니다.”

김씨는 삼성항공에서 노조를 만들려다 1995년 최종 해고됐다. 이후 복직을 외치며 25년 동안 질긴 투쟁을 이어왔다. 김씨는 그 오랫동안을 함께 해준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여러 차례 얘기했다. 그는 “25년 동안 머릿속에서 아버지를 단 한 번도 잊어본 적 없다.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이 컸고 남편 노릇 아빠 노릇을 하지 못한 점이 미안했다”며 “아내와 아이들에게 남은 평생 지금까지 못한 걸 메꾸며 살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김씨가 삼성에서 노조를 만들려고 하자 아버지와 갈등이 있었고, 1991년 김씨의 아버지는 “노조 활동을 포기하라”는 취지의 유언장을 남긴 뒤 행방불명 됐다.

지난 28일 삼성과 최종 합의를 했지만 협상 과정도 험난했다. 지난달 29일부터 삼성과 김씨 쪽 대리인 사이에서 협상이 진행됐지만 협의에 다다랐다 무산되는 일이 반복됐다. 급기야 임미리 ‘김용희 삼성해고노동자 고공농성 공동대책위원회’ 대표는 지난 15일 “삼성이 일방적으로 합의를 미루고 있다”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그때마다 김씨도 “피가 마르는 심정”이었지만 김씨와 연대하는 이들도 속이 타들어 갔다. 김씨가 고공농성을 벌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곁을 지킨 연대자 박미희(61) 씨는 “협상이 안 되고 시간이 갈 때마다 온전히 내려올 수 있을까 걱정이 되면서 정말 많이 마음을 졸였다”고 말했다. 협상 대표를 맡은 임 대표도 “협상이 지연될 때 마다 가슴이 철렁였다. 협상이 타결되고 지상에 내려오는 순간에도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조마조마했다”고 설명했다.

김씨의 연대자들은 김씨의 투쟁과 승리는 단순히 김씨 혼자만의 승리가 아니라고 짚었다. 임 대표는 “노동자들에게 전향적인 자세로 협상에 나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기업과) 억울한 일이 생겼을 때 이번 계기로 제대로 된 협상이 이뤄질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 또한 앞으로 어려운 노동 환경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 생각이다. 그는 “지상에 내려왔을 때 가슴 뛰게 기쁜 건 (연대해 준) 동료들 곁으로 달려가 손을 잡고 함께 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며 “전국 농성장을 돌아다니며 순회 연대 투쟁을 하며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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