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흥동의 쿠팡 고양 물류센터 모습. 고양/연합뉴스
경력 5년차 ‘쿠팡맨’ ㄱ(가명·38)씨는 최근 배송을 위해 들른 한 아파트 단지의 경비원에게 “쿠팡은 들어오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지난달 23일 쿠팡 부천 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거 발생한 뒤였다. 해당 아파트는 그동안 비대면 배송으로 택배를 경비실에 맡기던 곳이었다. 경비원은 기록일지를 문밖으로 내밀며 배송지만 적어두고 가게 했다. 경비실 밖에 택배를 두고 발길을 돌리는 김씨의 기분은 복잡했다. “감염될까 무서우셨나 봐요. 현장이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배송노동자들이 조금씩 위축되고 눈치를 보게 되죠.”
또 다른 쿠팡맨 ㄴ(44)씨도 최근 아파트 승강기를 타려다 씁쓸한 경험을 했다. 자녀와 함께 있는 여성이 쿠팡 조끼를 입은 ㄴ씨를 보고 아이에게 “택배 아저씨 짐 있으니까 다음 승강기를 타자”고 말했기 때문이다. “택배 무게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그냥 제가 쿠팡맨이라 무서우셨던 거죠.” ㄴ씨가 이렇게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경기도 부천의 쿠팡 물류센터를 중심으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하면서 쿠팡맨 ‘기피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늘어난 물류량을 소화하느라 밤낮없이 뛰었던 쿠팡 배송 노동자들이 회사 쪽의 미흡한 대처로 발생한 사회적 비난을 고스란히 뒤집어쓰게 된 것이다. 국내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한 뒤 4개월 넘는 기간 동안 전국을 누빈 7천여명의 쿠팡 배송 노동자들 중에 확진자는 한 명도 없었다. 확진자는 모두 물류센터에서 나왔다. 쿠팡의 한 계약직 노동자는 “그만큼 현장 노동자들은 살얼음판 걷듯 스스로 방역에 힘쓰며 배송을 해온 것”이라며 회사 쪽의 대처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책임은 회사에 있지만 현장에서 따가운 시선을 견디는 것은 고스란히 노동자의 몫이다.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현직 쿠팡맨의 글은 이런 심경을 잘 담고 있다. 지난달 29일 한 커뮤니티에 ‘저 쿠팡 배송기사인데 사람들 때문에 눈물나네요’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을 보면, 작성자는 “코로나가 시작되고 쿠팡에서 몇 개월 동안 셀 수 없을 정도의 물량이 팔리고 배송기사들은 하루에 두세시간 자며 몸이 으스러지도록 일했다. 한달 동안 몸무게 7㎏이 빠졌다. (그러나 쿠팡 물류센터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한 뒤) 마스크 쓰고 뛰다가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 때도 괜히 눈치가 보여 다시 숨을 참아야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이 무더기로 확진자가 됐고, 모든 국민의 분노는 쿠팡으로 가고 있더라”며 “배송을 나가는데 갑자기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들과 위아래로 훑으며 내젓는 고개, 직장인들이 모여 ‘쿠팡 싫다. 짜증나’, 경비원의 ‘세균덩어리 오지마’ 등 잔인한 말들이 있었다.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던 시간들이었다”고 토로했다.
집단감염 사태로 쿠팡의 물량이 줄면 그 부메랑은 다시 노동자들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조찬호 공공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 조직부장은 “이 사태가 장기화되면 결국 일용직과 계약직이 가장 먼저 나가떨어질 것”이라며 “사쪽이 이번 상황을 거울삼아 앞으로 전화위복이 되도록 노동 상황을 개선하는 데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배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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