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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방역 대책 손봤지만…언 손에 면장갑 ‘쿠팡 혹한센터’

등록 2020-06-07 19:28수정 2020-06-08 12:04

르포 ㅣ 쿠팡 물류센터 일일 취업현장

버스서 체온 재고 열화상 기기까지
노동자들 “바뀐 것 같네” 수군수군

방한복 지급땐 ‘거리두기’ 감독 허술
영하18도 방한복에 핫팩, 장갑은 안줘
안경에 성에 서려 ‘턱스크’ 할 수밖에

직원은 마스크 안쓴채 ‘빨리빨리’ 독촉
식사시간 빼곤 몸 녹일 틈조차 없어
4일 경기도의 한 물류센터 지하 2층에 줄선 채 기다리는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모습.
4일 경기도의 한 물류센터 지하 2층에 줄선 채 기다리는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모습.

4일 경기도의 한 물류센터 지하 2층에 줄선 채 기다리는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모습.
4일 경기도의 한 물류센터 지하 2층에 줄선 채 기다리는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모습.

안경에 낀 얼음을 벅벅 긁어냈다. 눈앞이 보이는 것도 잠시, 마스크 사이로 입김이 뿜어져 나올 때마다 영하의 온도 탓에 곧장 안경 렌즈에 성에가 내려 앉았다. 앞을 보려면 김이 서리지 않도록 마스크를 턱까지 내린 채 일하는 수밖에 없다. ‘턱스크’다. 주위를 돌아보니 안경을 낀 이들 대부분이 턱스크 차림이었다.

그러나 방역에 대한 두려움은 뒷전이었다. 바깥이 초여름인 걸 믿기 어려운 냉동창고의 추위 때문이다. 경기도의 한 쿠팡 물류센터 냉동팀 일용직 노동자로 취업한 4일, 불과 두어시간여 만에 얼어붙은 오른쪽 손가락 끝엔 감각이 사라졌다. 꾹 눌러봤지만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속눈썹까지 얼어 눈을 깜빡이기도 쉽지 않았다. 고개를 드니 얼어붙어 새빨개진 귀에 핫팩을 댄 채 운반수레를 미는 동료가 보였다. 다른 노동자들처럼 그의 머리카락도 하얗게 염색이라도 한듯 한올한올 얼어붙어 있었다. ‘영하 18.2도’. 러시아의 혹한기를 방불케 하는 냉동창고에서 노동자들은 모두 조금씩 얼어붙고 있었다.

지난달 24일 경기도 부천 쿠팡 물류센터에서 노동자들의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일어난데다, 나흘 뒤인 28일엔 인천 물류센터의 계약직 노동자가 코로나19와 무관하게 작업 중 숨진 사실 등이 확인되자 쿠팡 물류센터의 노동환경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일각에선 쿠팡 물류센터 노동실태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겨레>는 지난 4~5일 한 쿠팡 물류센터를 찾아 오후조(오후 5시~새벽 2시) 냉동팀에서 일하며 노동 환경 등을 돌아봤다.

집단감염 사태를 두고 비난 여론이 비등한 뒤라 방역대책은 개선된 듯했다. 4일 물류센터에 도착하자 통근버스에 한 직원이 올라와 온도를 재고 기침과 목 통증 여부를 각각 적게 했다. “오늘부터 바뀐 거 같네.” 버스에 탄 노동자들이 수근거렸다. 작업 전 대기장소에선 열화상 카메라도 거쳤고, ‘거리두기’를 위해 복도 바닥엔 발자국 스티커도 일정 간격으로 붙여둔 상태였다. 하지만 수도권 전역에서 버스를 타고 온 단기 노동자들이 밀집해 있는데도 거리두기 지침은 철저히 지켜지지 않았다. 작업 전 휴대전화를 제출하거나 방한복을 받으려 다닥다닥 붙어선 이들에게 “거리두기를 해달라”고 감독하는 이는 없었다.

열악한 노동 환경도 방역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냉동구역 바깥 상온에서 상품 분류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은 2인1조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로켓배송’에 맞춰 속도를 올리느라 마스크를 턱까지 내려 쓴 채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마스크도 쓰지 않은 직원이 수시로 “빨리 처리하자”고 소리치며 채근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 계약직 노동자는 “부천 물류센터가 폐쇄되며 물품이 우리 센터로 몰렸는데, 코로나19가 무서운지 지원자가 적어져 업무 강도가 더 높아진 상태”라고 전했다.

냉동센터 노동자에게 지급된 공용 방한화와 면장갑, 핫팩. 영하 18도의 공간에서 밤새 일하지만, 귀마개도 방한장갑도 없다.
냉동센터 노동자에게 지급된 공용 방한화와 면장갑, 핫팩. 영하 18도의 공간에서 밤새 일하지만, 귀마개도 방한장갑도 없다.

방역대책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고된 노동환경에도 불구하고 안전교육도 없이 일을 시작한 데다, 영하 18도의 냉동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방한대책은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냉동팀 직원들을 위해 지급된 방한용품은 방한화, 방한복과 면장갑, 핫팩 뿐이었다. 혹독한 추위에 가장 취약한 건 손끝이나 귀였는데 두터운 손장갑, 귀마개 등은 지급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계약직 직원들은 스스로 물품을 준비해왔지만 ‘냉동센터에서 일한다’는 공지를 받지 못한 일용직 노동자들은 추위를 견디느라 힘겨워보였다. 손이 너무 시려 관리자에게 “두꺼운 장갑이 따로 없냐”고 물었더니, “미안하지만 없다”는 답만이 겸연쩍은 표정과 함께 돌아왔다. 첫날 온종일 귀가 새빨간 채로 일해 동상에 걸릴까 염려됐던 40대 일용직 ‘형님’은 이튿날엔 출근하지 않았다. 권동희 노무사(일과사람 법률사무소)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관한규칙에 따라 ‘한랭’ 작업을 하는 경우 방한복, 방한모자, 방한화와 방한장갑을 지급하게 돼 있다. 방한장갑을 아예 지급하지 않았다면 5년 이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 벌금을 물게 할 수 있다”고 짚었다.​

식사 시간을 빼곤 잠시나마 몸을 녹일 시간도 없었다. 한 일용직 동료는 “어떻게 밤 10시까지 밥먹으라는 소리 하나 없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오후 5시 근무를 위해 서울에서 오후 3시30분께 출발했으니, 배가 고플 만도 했다. 뒤늦게 관리직원이 뛰어들어와 “식사하라”고 소리치자 5시간째 쉬지도 못하고 얼어붙었던 노동자 10여명이 무거운 걸음으로 느릿느릿 따라나갔다. 잠시 대화를 나눈 계약직 동료는 “방한용품 없이 일하다 두통이 생기고 기침이 심해져서 오늘은 완전 무장을 하고 왔다”며 “여기서 일하면서 손목 통증이 도졌다”고 말했다.

그렇게 냉동인간으로 9시간을 견디고, 새벽 2시가 돼서야 일을 마쳤다. 방한복을 반납하고 통근버스에 타 서울역에 도착하니 새벽 3시20분이었다. 한 시간 시급 1만원을 털어 택시에 탔다. 이틀 전까지 튼튼했던 몸에선 오한이 났다.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어도 병이 찾아온 듯했다.

글·사진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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