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승계를 위한 불공정 합병, 분식회계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법원의 영장 기각 뒤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이 9일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 소명이 부족하다”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했지만, 기각 사유에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다”고 언급한 것은 검찰의 수사 성과를 어느 정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9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은 전날 열린 이 부회장의 영장실질심사에서 이 부회장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물증을 다수 제시했다. 삼성이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의 공동투자사인 미국 제약회사 바이오젠과의 협상 결렬로 2014년 말부터 2015년 초에 ‘당분간 상장은 힘들다’고 결론 내린 문건과, 삼성이 합병을 앞두고 ‘주가 부양’ 목적으로 발표 시점을 ‘2015년 7월 초’로 특정한 문건 등이다. 이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안 투표를 앞두고 발표된 에피스 나스닥 상장 추진이 주가 부양을 위한 ‘허위 발표’라는 결론을 뒷받침한다.
복제약 개발 업체인 에피스는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와 바이오젠이 합작해 만든 회사였기 때문에, 상장을 하려면 바이오젠의 동의가 필수였다.
이 부회장이 불법 승계 과정을 보고받았다는 물증도 제시됐다. 검찰은 2012년 미래전략실 핵심 인력들이 승계 작업을 위한 ‘티에프’(TF)를 구성했고, 논의 내용을 ‘프로젝트 지(G·거버넌스의 앞글자)’라는 문건으로 수년간 정리한 내용을 확보했다. 또 검찰이 확보한 ‘이 부회장님 보고 필’이라고 적힌 현안 관련 보고 등 미전실 문건 수백건도 영장실질심사 때 제출됐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혐의를 뒷받침하는 물증은 삼정회계법인의 보고 문건이다. 통합 삼성물산 탄생 직후인 2015년 9월과 11월, 삼성바이오의 외부감사인이었던 삼정회계법인이 삼성물산에 보낸 보고 문건에는 삼정이 콜옵션 조항을 확인하기 위해 합작계약서를 요청했으나 삼성바이오가 거부했다는 내용과,
삼정이 콜옵션 부채를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모두 소급해서 반영해야 한다고 결론 내린 내용이 담겨 있다. 삼성은 “콜옵션 가치를 평가할 수 없기 때문에 콜옵션 부채를 반영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는데, 이 문건들은 삼성의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법원이 ‘범죄혐의 소명’이 아닌 ‘사실관계 소명’이란 표현을 쓴 것을 근거로 정반대의 주장을 내놨다. 변호인단은 이날 입장문에서 “법원의 기각 사유는 ‘기본적 사실관계 외에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등 범죄혐의가 소명되지 않았다’는 취지”라고 주장했다. 검찰이 1년7개월 동안 수사를 진행하면서 무수히 많은 자료를 확보하긴 했지만, 이 부회장의 법적 책임을 입증하기엔 부족한 ‘물증’이라는 것이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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