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수 대법관이 후보 시절이던 지난 2008년 9월 인사청문회에서 의원의 질의를 들으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기소 여부를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위)가 심의하게 되면서 대법관 시절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사건 무죄 판단을 내린 양창수 위원장의 수사심의위 참여에 논란이 일고 있다. 삼성 총수 일가의 경영권 ‘편법 승계’에 면죄부를 준 양 위원장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서울중앙지검 부의심의위원회는 11일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이 신청한 수사심의위 소집 안건을 의결했다. 주부와 교사, 회사원, 의사, 대학원생, 자영업자, 퇴직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15명의 위원들은 이날 검찰과 이 부회장 변호인단이 낸 의견서를 검토한 뒤 3시간이 넘는 토론을 거쳐 수사심의위 부의를 결정했다. 위원들은 사회적으로 관심이 큰 사건인 만큼 외부의 의견도 들어보고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표결 결과를 공개할 순 없지만 과반수를 살짝 넘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대검은 다음주부터 수사심의위 절차에 착수한다. 수사심의위는 15명 위원으로 구성된 현안위원회를 꾸려 이 부회장 기소 여부를 심의·의결하는데 이는 권고적 효력을 갖는다. 그러나 수사심의위와 현안위원회를 이끄는 양창수 위원장은 2009년 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이건희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다수의견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장은 자녀들의 그룹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해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이 부회장 등에게 헐값에 넘긴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배임)로 기소됐지만 당시 대법원은 대법관 6 대 5 의견으로 면죄부를 줬다. 당시 양창수 대법관 등 6명은 “저가 발행으로 인한 기존 주주 소유 주식의 가치 하락은 해당 주주의 손해일 뿐 회사의 손해가 아니므로 경영진에게 배임죄를 물을 수 없다”는 삼성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의 불법 경영권 승계’라는 동일한 성격의 사건을 다루는 수사심의위 심의에 양 위원장이 참여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있다. 위원장은 현안위 의장으로 표결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회의를 주재할 뿐 아니라 무작위 추첨의 현안위 구성 과정에서 “특정 직역이나 분야에 편중되지 않도록 하는” 권한도 갖고 있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과 이 부회장 쪽 모두 민감한 사건이기 때문에 절차상 문제로 어느 한쪽이 승복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사전에 양 위원장 본인이 회피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날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공모해 이 부회장에게서 ‘승계 작업을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재상고심에서 징역 18년형이 선고된 원심을 확정했다. 86억여원의 뇌물이 오간 ‘경영권 불법 승계 작업’의 실체를 대법원이 거듭 확인한 것으로 “승계 작업은 미래전략실이 알아서 했을 뿐”이라는 이 부회장 쪽 방어전략은 설득력이 크게 떨어지게 됐다.
김정필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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