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재판 방청 연대자들이 16일 박사방 성착취물 재유포 혐의로 기소된 강아무개씨 재판 방청을 위해 인천 미추홀구 인천지법으로 들어가고 있다. 장예지 기자
16일 아침 8시30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서관 입구 앞에 10대 후반에서 30대까지 여성 17명이 모였다. 2014년부터 재판 방청을 통해 성범죄 재판 정보와 실상을 공유하고 피해자 지원을 해온 활동가 ‘마녀’가 재판을 함께 기록하고 감시할 목적으로 ‘연대자’를 모은 첫 프로그램이었다. 마녀가 이날 오전 10시 서울고법에서 열릴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아무개씨의 범죄인 인도심사 심문에 앞서 사전교육을 시작했다.
“재판 방청은 머릿수를 채워서 피해자에게 힘을 주기 위한 차원만이 아닙니다. 단순히 재판 내용을 듣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록·분석하고, 이를 정리한다면 높은 법대에 오른 재판부도 그런 (시민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할 거예요.”
방청연대에 참여한 닉네임 ‘소나무’(19)는 “언론으로만 재판을 볼 땐 (성범죄 피고인의) 형량이 왜 이렇게 낮은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사에 나오지 않는 부분들에 대해 직접 알고 싶어서 (교육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전교육을 마친 이들은 마녀와 함께 법정에 들어섰다. 서울고법 형사20부(재판장 강영수)는 이날 많은 방청객이 모일 것에 대비해 화상으로 재판을 지켜볼 수 있는 중계법정 두 곳을 함께 운영했다. 서관 406호와 407호에 모인 시민들은 1시간 동안 숨을 죽이고 재판을 지켜봤다. 뒷자리에 앉은 한 여성은 중계화면을 더 잘 보려고 일어선 채 재판을 방청했고 저마다 공책과 태블릿피시, 휴대전화에 손씨 발언을 받아 적었다.
이날 심문에서 피고인 손씨는 눈물을 흘리며 “너무나 부끄럽고 염치없지만 가족이 있는 한국에서 다시 처벌받을 수 있다면 어떤 중형이든 다시 받고 싶다”고 말했다. 재판을 지켜본 이들은 입을 모아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역시 없었다”며 씁쓸해했다. 손씨의 모습을 본 손아무개(21)씨도 “결국 (손씨가) 미국에 가지 않으려는 것도 처벌이 강해서 그런 것 아니겠나”라며 “직접 재판에 참여하는 것이 재판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지 보여주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손씨 재판이 끝난 뒤 이들은 교대역에서 출발하는 광역버스를 타고 인천지법으로 향했다. 박사방 성착취물을 재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잼까츄’ 강아무개씨의 재판 방청을 위해서다. ‘연대자’는 22명으로 늘어 있었다. 지난달 19일 강씨의 가족이 방청 연대를 온 시민들을 무단으로 촬영해 논란이 일기도 했던 재판이기도 했다. 이날 재판은 피해 영상이 담긴 하드디스크 증거조사를 위해 모두 비공개로 진행돼 방청을 할 순 없었지만, 1시간 반이 넘도록 방청객들은 마녀와 질의응답을 이어갔다. 휴대전화를 이용한 재판 검색과 재판기록 열람·복사 방법, 성폭력 피해자 증인지원 절차 등을 꼼꼼히 익혔다.
마녀는 “전국 각지 디지털 성착취 사건을 비교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해 연말에 발표회를 열 계획이며 이를 법관들에게도 전달할 것”이라며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도 사람이고, 시스템의 변화를 이끄는 것도 사람이다. 방청연대 재판 모니터링이 한국의 법원을 바꿀 것이라 생각하며, 현장에서 (많은 시민을) 만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방청연대를 마친 김아무개(25)씨도 “혼자 처음으로 법원에 가는 게 어렵게 느껴졌는데, 막상 와 보니 별일이 아니었고 (교육을 통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며 “방청연대를 하면서 피해자 중심으로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장예지 조윤영 기자
pen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