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29일 연 ‘병원 내 가습기살균제 사용' 관련 조사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최예용 부위원장(왼쪽)이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앞쪽에 놓인 흰 알약이 한 대학병원에서 사용한 식기소독제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한 대학병원이 호흡기 유해 성분으로 이뤄진 식기소독제를 가습기살균제로 착각해 4년여간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29일 기자회견을 열어 “400병상 이상의 대규모인 ㄱ대학병원이 지난 2007년 2월부터 2011년 6월까지 식기소독제인 ‘하이크로정’을 가습기살균제로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병원이 내부 지침에까지 명시하면서 꾸준히 유독성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사실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ㄱ병원에서 식기소독제가 가습기살균제로 둔갑한 배경엔 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무리한 이윤 추구에 나선 도매업체가 있다. 사참위 조사 결과를 보면, 의약품을 도매로 파는 ㄴ업체는 식기소독제인 ‘하이크로정’을 가습기살균제로 소개하는 거짓 제품설명서를 작성했다. ㄴ업체 관계자는 사참위 조사에서 “(당시) 가습기살균제가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어 판매처를 더욱 늘리고자 제품 용도를 변경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하이크로정은 식품위생법상 식기 외에 가습기 살균‧소독 용도로 사용해선 안 되는 제품이다. 하이크로정의 주성분인 이염화이소시아뉼산나트륨(NaDCC)은 호흡기에 여러번 노출될 경우 공기 통로가 막히는 등 폐 질환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NaDCC로 이뤄진 또 다른 가습기살균제 ‘엔위드’에 대해선 이달 기준 이용자 103명이 환경부에 피해 신고를 접수한 상태다.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29일 연 ‘병원 내 가습기살균제 사용' 관련 조사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최예용 부위원장(왼쪽 둘째)이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ㄱ병원은 ㄴ업체의 거짓 제품설명서를 토대로 정식 계약을 맺고 ㄴ업체로부터 4년여간 제품을 공급받았으며, 이후 원내 ‘감염관리지침서’에 ‘하이크로정’을 공식 가습기살균제로 명시하기까지 했다.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식품의약품안전청(현 식품의약품안전처), 지방자치단체 등도 ㄴ업체의 위법행위를 발견하지 못했다.
사참위는 아직 ㄱ병원에서의 피해 사례가 확인되지 않았으나 정부가 병원의 가습기살균제 사용 실태를 전면 재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사참위의 조사에선 이 도매업체가 하이크로정을 “(가습기살균제 용도는 아니지만) 유치원, 요양병원, 산후조리원에도 납품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예용 사참위 부위원장은 “사참위는 개인의료기록 등에 접근할 수 없어 조사 한계가 있다”며 “보건복지부 등 정부 당국은 ㄱ병원 이용자 중에 ‘하이크로정’ 피해자가 있는지, 다른 병원에서도 마찬가지로 제품을 오용한 사례가 있는지 등을 전수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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