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갑질금지법 시행 1년을 맞아 ‘구멍슝슝 갑질금지법 리모델링 기자회견’을 열고 적용범위 확대와 근로기준법 76조 3 불이행 처벌조항 신설을 촉구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사내 하청은 불법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하청 노동자들은 여전히 불법 파견과 원청 갑질 등 이중고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7월22일 대법원은 원청업체인 현대자동차에 외형만 도급 계약 형태를 유지하고 실제로는 임금 지급과 업무 지시 권한을 행사하며 파견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직접고용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19일 공개한 피해 사례를 보면 하청노동자들이 겪는 차별이 잘 드러났다. 하청노동자 ㄱ씨는 “본사 관리자들이 상주하는 물류센터에는 에어컨을 계속 틀어주지만, 하청노동자들이 주로 일하는 곳에선 기온이 35도를 넘어도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는다”며 차별 피해를 호소했다. “욕설에 가까운 말을 들어 하청·원청 사업주 모두에게 신고했으나 아무런 조처도 없었다”는 제보도 있었다. 한 공공기관의 3차 하청회사 노동자인 ㄴ씨는 “야간 근무를 해도 하청노동자에게는 따로 저녁시간이 주어지지 않아 업무 중간에 컵라면으로 허겁지겁 배를 채운다”고 했다.
부당한 처우에 맞서기 위해 하청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면 돌아오는 것은 ‘보상’ 아닌 ‘보복’뿐이었다. 하청노동자 ㄷ씨는 “노조를 만든 뒤 원청 사업주에게 교섭을 요청하자 하청회사 사장에게 말하라고 하더니, 나중에는 ‘계약을 해지하겠다’며 노골적으로 노조 와해를 시도했다”고 말했다.
하청 사업장은 5인 미만 사업장과 함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적용되지 않는 대표적인 노동 사각지대다. 파견법은 제조업의 직접 생산·공정 업무는 파견을 금지하고 있지만 원청업체들의 불법 파견은 계속되고 있다. 직장갑질119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에 대해 원청업체들은 ‘사용자가 아니다’며 법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직장갑질119는 “간접고용 노동자도 직장 내 괴롭힘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적용대상에 원청사업주·관리자도 포함시키고, 특수고용 노동자, 4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청노동자는 코로나19로 인한 고통도 정규직의 배로 짊어졌다. 직장갑질119가 지난달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코로나19 이후 지난 6달 동안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실직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26.3%로, 정규직(4.0%)에 견줘 6.5배 가까이 많았다. 코로나19로 기업의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회사가 계약 해지를 통해 하청노동자를 쉽게 해고한 것이다.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괴롬힘 금지법 개정 △하청 노동자에 대한 코로나19 대책 마련 △원청업체에 불법파견 책임을 묻는 2010년 현대자동차 판결 이행 △원청업체가 사용자로서 교섭 등 책임을 지도록 노조법 개정을 요구했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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