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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성폭력 발생시 동료 역할은? 상사 역할은?

등록 2020-07-28 04:59수정 2020-07-28 10:25

성폭력 처리 매뉴얼 작동하려면
처리과정 전문성·공정성 확보도 필수
사건처리 담당자들이 주관적 판단
사소한 일로 치부, 사건 무마 빈번

시스템은 존재하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서울시의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 매뉴얼은 모범 사례로 평가받았지만 공기처럼 존재하는 위력 앞에서는 무력했다. 일반 사업장은 이보다 더 열악하다. 피해 구제 창구가 없거나 매뉴얼조차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전문가들은 성폭력 예방부터 사후처리까지 단계별로 재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사업주가 성희롱 예방교육을 매해 실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성희롱 피해가 발생했을 때 구성원별 역할이 중요하지만 예방교육에 역할 교육은 거의 없다고 짚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으로 고소한 피해자가 동료 20여명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밝힌 이유기도 하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피해 발생 시 최종 책임자와 직속 상사, 동료 등에게 각각의 역할이 있는데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자신의 역할에 대해 무지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에선 ‘주변인 개입 교육’을 유망한 대안으로 보고 있다. 뉴햄프셔대 연구진이 300곳 넘는 대학에서 주변인 개입 교육을 시범 운영했는데 의미 있는 변화를 거뒀다는 것이다. 참여자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게 아니라, 성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협력하는 동료라고 가정하는 게 주변인 개입 교육의 뼈대다. 이 프로그램은 미 공군에 적용됐고 뉴욕시도 2018년 모든 고용주에게 성희롱 예방교육을 의무화하면서 주변인 개입 방식을 적용하게 했다.

사건처리 과정에선 전문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게 필수다. 관리자나 고충 처리자들이 피해를 주관적으로 판단해 사소한 문제로 치부하거나 사건을 무마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박 전 시장 사건 피해자 역시 “도움을 요청하자 인사담당자가 ‘(네가) 예뻐서 그렇다’고 했다”고 전했다. 여성가족부의 성희롱 실태조사(2018) 결과를 보면,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의 81.6%는 피해가 생겼을 때 ‘참고 넘어갔다’고 답했다. 참고 넘어간 이들의 31.8%는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라고 응답했다. 공정한 처리 절차가 중요한 이유다.

지난 22일 열린 박원순 전 서울시장 피해자 쪽이 진행한 2차 기자회견
지난 22일 열린 박원순 전 서울시장 피해자 쪽이 진행한 2차 기자회견

신고 뒤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조처도 시급하다. 피해자는 피해를 호소했다는 이유로 조직 내에서 ‘내부 고발자’라는 시선 속에 갑절의 고통을 겪는다. 조직 내 만연한 2차 가해는 피해자의 신고를 막아서는 또 다른 요인이다. 현행법에선 ‘2차 피해’를 ‘사업주가 내린 불리한 조처’ 등으로 좁게 해석한다. 최미진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대표는 “2차 피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상황에서 2차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조처들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최종적인 관리·감독권을 가진 기관장 등이 행위자로 지목된 경우 사건처리 창구를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여가부가 2018년에 만든 ‘공공기관의 장 등에 의한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 매뉴얼’에선 가해자가 공공기관의 기관장이나 임원인 경우 상급기관에서 직접 사건처리 과정을 관리·감독할 것을 제안했다. 서울시 산하 기관장이 가해자인 경우 상급기관인 서울시가 직접 조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서울시장이 가해자가 된 경우에 대한 절차는 없다. 최 대표는 “여가부와 인권위 등이 제도적 맹점을 보완할 수 있는 제도를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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