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경영 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월8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 경영권 불법승계’의 배경이 되는 사건은 2015년에 추진된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합병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소의 비용을 들여 최대한의 그룹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주주와 회사에 이로운 일인지 검토 없이 분야가 전혀 다른 두 개의 대형 기업을 인위적으로 결합시켰다는 게 의혹의 뼈대다. 5년 전 두 회사가 법적으로 합병을 마무리했던 1일, 검찰은 삼성이 조직적으로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수만 건의 시세조종성 주문을 통해 주가조작을 벌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삼성 미래전략실은 이미 2012년부터 ‘프로젝트 지(G·거버넌스의 준말)’라는 비밀 프로젝트에 착수해 구체적인 ‘승계계획안’을 마련했다. 총수 일가가 지배하는 에버랜드(이후 제일모직)와 삼성전자의 2대 주주인 삼성물산을 결합시켜,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에 대한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확대한다는 내용이었다. 검찰은 삼성이 이를 마치 회사 성장을 위한 ‘경영상 판단’인 것처럼 정당화하기 위해 ‘6조원의 합병 시너지’와 조작된 ‘합병비율 검토보고서’ 등 허위 명분을 짜냈다고 봤다.
검찰은 합병 발표 뒤 엘리엇 등 삼성물산 주주들의 반발로 합병이 위기에 처하자, 이 부회장이 긴급 대응전략을 수립하는 등 직접 움직였고 이때 마련된 방침에 따라 삼성이 찬성표(의결권) 확보를 위해 국민연금 등 주요 주주를 상대로 불법적인 로비를 벌인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검찰은 삼성이 케이씨씨(KCC)에 경제적 이득을 약속하는 ‘이면계약’을 맺은 뒤 삼성물산 자사주 전량을 넘겨 합병에 찬성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가까스로 통과된 뒤, 제일모직이 미전실의 지시로 일주일 동안 자사주 172만주(2902억원 상당)를 집중적으로 사들여 주가부양(시세조종 혐의)에 나선 정황도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합병안 통과 뒤에도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가격(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이 주식을 회사에 파는 가격) 아래로 떨어지면 합병이 무산될 위험이 커지는데, 당시 삼성물산 주가가 이런 상황이었다. 검찰은 합병비율이 고정돼 제일모직의 주가가 오르면 삼성물산의 주가도 함께 오르는 ‘동조효과’를 활용해 삼성물산 주가방어에 나선 것으로 파악했다. 검찰은 제일모직이 자사주를 사들이면서 고가매수 주문 7049회, 물량소진 주문 1만3185회 등 수만 건의 시세조종성 주문을 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런 노력으로 삼성물산의 주가는 주식매수청구기간 동안에는 청구가격 위로 유지되다 청구기간이 끝난 뒤 바로 급락했다.
검찰은 이 부회장 등이 삼성물산 주주의 ‘이익 보호 의무’를 위배했다는 전문가들 의견을 반영해 구속영장에는 없던 업무상 배임 혐의를 추가로 적용해 기소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자본시장법은 시장교란 범죄의 대상이 불특정 다수로 구성되는 반면 배임은 개별적으로 피해를 본 권리 주체들을 특정하는 차이가 있다”며 “업무상 배임죄 적용은 이 부회장이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직접 손해를 입힌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기소 과정에 느닷없이 이를 추가한 것은 피의자의 방어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수사심의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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