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경영 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월8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이 2015년 7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안 통과를 위한 임시 주주총회를 앞두고 언론사를 상대로 전방위적인 여론 조성 작업을 벌인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이 무렵 삼성은 나흘 동안 36억원의 광고를 언론사들에 발주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에 따르면 삼성은 합병에 반대하는 외국계 헤지펀드를 ‘먹튀 자본’으로 규정하고, 이에 부합하는 기사를 언론사에 광범위하게 청탁했다. 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 계획안이 담긴 이른바 ‘프로젝트-G’(G는 Governance의 줄임말) 문건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런 내용을 지난 1일 이재용 부회장 등을 기소하면서 법원에 제출한 공소장에 기록한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한겨레>가 확보한 이 부회장 등의 공소장 내용을 종합하면, 합병 결의 사실이 공개된 직후인 2015년 6월4일 미국의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물산 지분 보유 사실을 공개하며 반대 분위기를 주도하자, 이 부회장과 삼성 미래전략실 관계자들은 미국계 다국적은행 골드만삭스와 함께 대책회의를 열어 대응전략을 마련했다고 한다. 검찰은 이때 이 부회장 등이 합병 정당화를 위한 허위 명분과 논리를 국내외 주주 등 투자자와 아이에스에스(ISS) 등 의결권 자문사, 언론 등을 상대로 조직적으로 전파하기로 계획했다고 보고 있다. 엘리엇을 ‘투기 세력’ ‘먹튀 자본’이라 규정해 삼성그룹이 부당하게 공격받는 것이라는 취지의 기사 ‘프레임’도 이 대책회의에서 짰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이 부회장과 미전실 최지성 실장, 장충기 차장, 김종중 팀장 등이 합병과 관련해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려고 언론 대응 계획을 수립했다고 공소장에 적었다. 엘리엇을 ‘시세차익만 노리는 투기 세력’으로 규정해 삼성과 엘리엇의 선악 대결로 몰아 합병의 문제점을 숨기고, 조작된 합병 시너지 효과를 조직적으로 기사화해 일반 대중은 물론 투자자가 합병의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할 목적이었던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장 차장은 2015년 6월부터 이런 계획에 따라 미전실과 삼성물산 홍보팀을 지휘해 평소 알고 지내던 언론사 임직원, 기자에게 합병에 유리한 내용의 기사 작성을 수시로 요구했다고 한다. 특히 삼성은 7월17일로 예정된 합병 주주총회를 앞두고 나흘(7월13~16일)간 36억원가량의 의결권 위임 관련 광고를 언론사에 집중적으로 발주했다. 당시 이런 구조에서 나온 보도를 찾아보면, ‘투기자본의 기업경영 교란 막아야’(7월13일치 <동아일보>), ‘헤지펀드 먹잇감 된 한국기업 “일단 공격당하면 경영 올스톱”’(7월9일치 <조선일보>), ‘국민연금, 삼성물산 합병 백기사로 나서라’(7월9일치 <중앙일보>), ‘국민연금 삼성물산 합병 찬성, 당연한 선택이다’(7월13일치 <매일경제>) 등 검찰이 확인한 기사·칼럼만 11건이다.
2012년 10월 최지성 미전실 실장 지시로 설계된 이 부회장의 승계 계획안인 ‘프로젝트-G’ 문건은 이듬해인 2013년 1~2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 부회장에게 보고된 뒤 이 부회장 주도로 본격 실행에 들어간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은 합병 직전까지 은폐된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합작계약 조건들은 이 부회장이 회사 설립 당시 미국의 제약회사 바이오젠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직접 결정한 것이고, 합병 뒤 분식회계도 김종중 미전실 팀장으로부터 경과를 보고받은 뒤 직접 승인한 것이라고 공소장에 적었다.
삼성 쪽은 이 부회장 공소장 내용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며 앞으로 법정에서 충분히 반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정필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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