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ㄱ씨는 올해 초 회사로부터 ‘코로나19 때문에 경영이 어려워졌으니 일을 쉬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회사는 무급휴가 동의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으나 당장 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ㄱ씨와 직원들은 선뜻 회사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ㄱ씨가 무급휴가를 거부하고 출근하자 회사는 ㄱ씨와 출근한 직원들을 상대로 ‘괴롭힘’을 가하기 시작했다. 원래 하던 업무와 전혀 관련 없는 일을 맡긴 뒤, 하루 종일 매달려야 할 업무량을 단 2시간 안에 마무리하라고 지시했다. 시간 안에 일을 마치지 못하면 ‘회사의 규정을 위반한 데 대한 처벌을 감수하겠다’는 내용의 시말서를 쓰게 했다. 결국 ㄱ씨는 시말서가 누적돼 징계를 받을 위기에 처하자 지난 4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도움을 요청했다.
사업주가 직원에게 시말서 작성을 강요하며 이를 토대로 징계를 내리거나 퇴사를 강요하는 등 ‘시말서 갑질’이 만연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25일 직장갑질119는 지난 1월부터 9월 말까지 시말서를 빌미로 사업주로부터 모욕·괴롭힘·해고 등의 피해를 입었다고 들어온 제보가 143건에 이른다고 밝혔다.
직장갑질119가 공개한 사례를 보면 원청업체 갑질부터 직장 내 괴롭힘까지 다양했다. 용역업체 직원 ㄴ씨는 정해진 시간에 식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청업체 관리자가 부르는 대로 시말서를 받아 적어야 했고, 비슷한 내용의 시말서를 한번 더 제출하자 회사는 ‘해고 사유가 충족된다’며 ㄴ씨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이외에도 근무 시간 중 머리를 묶거나 간식을 먹었다는 이유로, 회의에서 사업주의 말에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는 이유로 업무에 제대로 임하지 못할 만큼 시말서 작성을 반복해서 강요당했다는 사례도 있었다. 시말서 작성을 거부하면 연봉을 깎겠다고 협박한 경우도 있었다.
직장갑질119는 “반성이나 처벌의 의미를 담고 있는 시말서는 노동자가 제출을 거부할 수 있고, 시말서를 반복 작성했다는 사실만으로 해고하면 안 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 고용노동부도 반성문 강요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명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윤경 기자
ygpar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