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씨가 자신의 휴대전화 달력 애플리케이션에 기록한 출퇴근 날짜. 유족 제공
“새벽에 제가 차려준 뭇국을 먹고 나선 게 남편의 마지막 모습이었어요.”
지난 12일 남편 영정이 놓인 빈소에서 ㄱ(50)씨의 아내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특수학교에 다니는 12살 아들은 향에 불을 붙이다 손을 데었다. ㄱ씨의 장인은 “사위 가족 셋이 월세 35만원짜리 단칸방에서 어렵게 살았다. 긴 시간 일 안 하면 잘릴까 힘들어도 일한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ㄱ씨는 쿠팡 마장물류센터와 물류 자동화 설비(컨베이어 벨트) 건설 계약을 맺은 화동화이테크 소속 노동자다. ㄱ씨는 지난 10일 경기도 이천 쿠팡 마장물류센터에서 공터에서 동료직원과 대화 중 쓰러졌다. 유족들은 ㄱ씨가 평소 지병이 없었다며 과로사를 의심한다. ㄱ씨의 형은 “아직 정식 부검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경찰로부터) 심근경색일 가능성이 크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심근경색은 과로사의 주요 원인 중에 하나로 꼽힌다. 유족은 산재 신청을 할 계획이다.
장시간 노동에도 ㄱ씨는 좀처럼 가족에게 티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텔레비전을 보다 꾸벅꾸벅 조는 게 그가 보인 ‘징후’의 전부였다. ㄱ씨 처남은 “일용직을 하다 고물상이 망해 다시 일용직 일을 하는 등 워낙 힘들게 살았다. 누나나 조카가 장애가 있고 집도 어려우니 시키는 대로 장시간 일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유족들은 주야간 맞교대를 하던 ㄱ씨가 최대 주 81시간을 일했다고 주장했다. 쿠팡과 ‘물류 자동화 설비 건설 계약’을 체결한 화동하이테크에서 3년 전부터 일을 한 ㄱ씨는 매일 출퇴근 시간을 휴대전화 달력 애플리케이션에 남겨놓았다. 9월부터 11월10일 숨지기 전까지 ㄱ씨는 보통 새벽 5시30분께 출근해 저녁 8시가 넘어 퇴근했다. 10월 마지막 주에는 6일 동안 81시간20분, 11월 첫째 주에는 6일 동안 81시간을 일했다고 기록돼 있다. 동료 ㄴ씨는 “컨베이어 벨트에 부하가 걸려 고장이 잘 났다. 급하게 고쳐야 했다”고 설명했다. 마장물류센터는 정상 운영이 아닌 시운전 단계로 설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일부 배송 물량을 취급했다고 한다.
ㄱ씨와 동료들이 가입한 모바일 메신저 단체 대화방을 보면 물류센터 인력을 관리하는 쿠팡의 자회사 쿠팡풀필먼트 소속 직원이 ‘레일 벨트가 끊어졌다’고 공지하고 ㄱ씨와 동료들은 ‘조치 완료했다’고 답하곤 했다. 이에 대해 쿠팡은 “쿠팡과 화동하이테크는 검수 작업을 통해 설치한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 후 불량이나 오류를 잡아가는 과정에 있었다. 쿠팡은 건설공사의 발주사로서 실제 시공을 맡은 화동하이테크의 업무에 관여할 수 없다” 며 “쿠팡 풀필먼트 소속 직원이 물류 자동화 시스템 설비 발주자로서 공사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현장에서 필요한 사항을 조정하기 위해 일부 인원들 간에 단톡방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쿠팡이 화동하이테크 직원의 근무시간을 알 수도, 간섭할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고인이 소속된 화동하이테크 쪽은 이날 “현재 사망 사실 외 특이사항이 없어 확인해드릴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반론보도] ‘쿠팡 마장물류센터 사고’ 관련
본지는 지난 2020년 11월 18일자 사회면에 쿠팡 마장물류센터에 근무하는 쿠팡 직원이 하청노동자 ㄱ씨 에 대한 업무상 지시를 하였고, 코로나19로 인해 폭증한 택배 물량으로 컨베이어 벨트 정비 업무가 과중하여 하청노동자 ㄱ씨가 사망하였다는 취지의 보도를 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쿠팡 측에서 “ㄱ씨가 속한 회사와 컨베이어 벨트 ‘운영’ 계약을 체결한 것이 아니라 컨베이어 벨트 ‘건설’ 계약을 체결한 것이었고, ㄱ씨의 업무는 ‘건설’ 계약에 따른 시운전 단계의 검수 작업이었기 때문에 택배 물량 증가와는 연관이 없었다”는 입장을 전해와 이를 알려드립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ㄱ씨가 들어가 있던 단체 카카오톡방. 유족 제공
ㄱ씨가 휴대전화 달력 애플리케이션에 기록한 출퇴근 시간. 9월15일 ㄱ씨는 새벽 5시40분 출근해 다음날 새벽 2시 퇴근했다고 기록해놓았다. 유족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