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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느닷없이 ‘암입니다’…두려움과 희망 사이에 서다

등록 2020-12-12 16:47수정 2021-11-06 15:34

[토요판] 양선아의 암&앎
(1) 암 진단

집에 오면 실신하듯 잠자고 출근
전투적으로 일하다가 받은 진단

침착하자 되뇌며 서점으로 직행
거리 두고 차분히 공부할 결심

내 잘못 아닌 걸 알긴 하지만
분노했고 이해도 할 수 없었다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7년 국가암등록통계를 보면, 암 유병자(1999년 1월1일부터 2017년 12월31일까지 암 진단을 받은 환자)는 전국민의 3.6%인 187만명이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기대수명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7.0%로 나타났다. 국민 다수가 자신이 암환자가 되거나 암환자의 가족이 되는 경험을 한다. 지난해 12월12일 암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인 <한겨레> 사회정책부 양선아 기자가 투병기를 격주로 연재한다.

“안타깝게도 암입니다.”

정확히 기억한다. 2019년 12월12일이라는 날짜를. 그날 진료실에서 나는 ‘암’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 동행한 친정어머니는 얘기를 듣자마자 휘청거렸고, 남편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의사는 “유방암이고 암 크기는 약 2.5㎝이며 전이는 안 된 것으로 보이니 빨리 수술 날짜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내 인생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암과 나를 한 번도 연결해 생각해본 적 없었다. 2017년 기준, 기대수명(83살)까지 살 경우 우리나라 국민이 암에 걸릴 확률은 35.5%이다. 국민 3명 중 1명이 암에 걸린다고 하지만,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 중에 암 환자는 거의 없었다. 회사 동료 가운데 암 환자가 몇 명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암은 나와는 동떨어진, 아주 먼 세상 일일 뿐이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것을 맞닥뜨린 사람의 그 황망하고 어이없고 이해 불가였던 심정을 어떤 언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마른 수건 쥐어짜듯 일하다

“왼쪽 가슴에 혹이 만져져요. 2㎝ 정도 되네요. 가슴 마사지해보면 혹 잡히는 분들 많아요. 요즘은 기술이 워낙 좋아져서 수술 간단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병원 빨리 가보세요.”

일은 많고 좀처럼 쉴 틈이 없는 나날이었다. 곰 세 마리, 아니 열 마리가 내 어깨에 앉아 시위하고 있는 것 같아 하루 월차를 내고 집 근처 마사지숍을 찾았다. 어깨 근육을 풀려면 뭉친 가슴 근육도 함께 풀어야 한다며 가슴을 구석구석 마사지해주던 마사지사는 자신 역시 수년 전 유방에 있던 종양을 떼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노라고 했다. 목욕탕 세신사나 피부관리 마사지사가 유방 쪽 종양을 자주 발견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2019년 한 해는 그 어느 해보다도 내게 역동적인 한 해였다. 교육 분야를 취재하다 사회정책팀 데스크로 발령이 났고, 또 몇 달 안 돼 사회정책팀 팀장이 됐다. 사립유치원, 자사고, 대입 정책 등 교육 관련 굵직굵직한 이슈가 많아 전투적으로 일했다. 그러다 교육, 복지, 노동, 젠더 분야를 포괄하는 사회정책팀 팀장이 되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이 이어졌다. 오전 9시에 출근해 밤 10시 넘어서까지 일하는 게 다반사였고, 집에 오면 ‘떡실신’해 잠만 자고 다시 회사로 출근했다. 월차도 쓰지 못하는 날이 많아 연말에 몰아 쉬겠다며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일하다 쉬는 첫날 집 근처 유방외과에 갔다.

30대 후반부터 건강검진할 때 유방 엑스선 촬영은 물론 초음파 검사까지 꼬박꼬박 했다. 2018년 말 검진에서도 이상 소견이 없었기에 별일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방 엑스선 촬영과 초음파 검사를 한 뒤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 표정이 어두웠다. 의사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문을 열었다.

“혼자 오셨어요?”

“네…. 결과는 어떤가요?”

“왼쪽 가슴에 혹이 있는데 모양이 안 좋아요. 암일 수 있어요. 양성 종양이면 표면이 둥글둥글하고 매끄러워요. 그런데 환자분의 종양 주변은 울퉁불퉁하지요? 조직검사를 진행하면 3일 뒤 정확한 결과가 나옵니다. 확률은 반반이에요. 일단 조직검사를 진행하고 결과를 보죠.”

‘암이라고? 암? 설마~ 아닐 거야~ 내 건강이 얼마나 좋은데….’

암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머리가 ‘띵’했다. 누군가 뒤통수를 호되게 내려친 것만 같았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안고 조직검사를 진행했다. 의사는 영상을 보면서 가슴 멍울이 있는 자리에 굵은 바늘을 총처럼 발사했다. 조직검사라는 것이 그렇게 금방 끝날 줄이야. 암에 대해 몰랐을 땐, 조직검사라는 말만 들어도 큰 수술처럼 느껴졌다. 검사는 의외로 간단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데

한쪽 가슴이 뻐근했다. 항생제를 처방받았다. 집으로 가는 마을버스에 오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슬픈 드라마의 여주인공이라도 된 듯 한없는 서러움이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난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데… 에이, 아닐 거야. 하늘이 나한테 그럴 리 없어. 나한테 그러면 안 되지. 두 아이 키우랴 일하랴 고생고생하다 이제 조금 살 만하니까 암이라고? 운동도 나름 열심히 했고, 나쁜 음식을 많이 먹은 것도 아니잖아. 아닐 거야. 의사가 확률은 반반이라고 했으니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다’는 신념과 ‘그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엎치락뒤치락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마음을 헤집어놨다. 날마다 마음은 쑥대밭이 됐다. 3일이란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갔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불면의 밤은 계속됐다. 가족들에겐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불안감은 똬리를 틀고 내 마음을 집어삼켰다. 특히 두 아이를 볼 때마다 ‘우리 애들은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암 진단을 받은 날, 의사는 다급한 목소리로 수술 날짜를 빨리 잡는 것이 좋겠다며 어느 병원으로 갈지 결정하라고 했다. 아무 준비도 못한 나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부랴부랴 같은 팀에서 일하는 김양중 의학전문기자에게 전화해 조언을 구했다. 김 기자가 추천해준 병원에 진료 예약을 잡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왔지만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어떤 경험을 할 때마다 그와 관련된 책들을 구매해 관련 정보를 먼저 섭렵하는 습관이 있던 나는 서점으로 달려갔다. 아파트 정문을 통과하는데 무릎이 탁 꺾이면서 넘어졌다. 넋이 나간 상태였나 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정신 차려, 양선아! 침착해, 양선아!’라는 말을 수백 번 되뇌었다. 광화문의 한 대형서점에 도착해 ‘유방암’을 검색어로 넣어 책을 찾고 암 관련 코너도 한참 둘러봤다. 서울아산병원 유방암센터에서 펴낸 <유방암 환자를 위한 치료 안내서>를 비롯해 유방암 관련 책 4권과 생존율 5%라는 말기 간암 진단을 받고도 기적적으로 암을 이겨낸 서울대병원장을 지낸 한만청 박사가 쓴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가 눈에 들어왔다.

1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그날 내가 서점으로 달려간 건 신의 한 수였다. 암 선고를 받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만 있었다면, 그 끔찍한 날에 가만히 앉아 신만 저주하고 있었다면, 아마도 나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못했을 것이다. 두려움과 불안에 먼저 질식돼 병이 더 악화됐을지도 모르겠다.

“왜 벌써 절망하는가? 암에 걸렸다고 다 죽지 않는다. 그 어떤 순간에도 절대 포기하지 마라!”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는 책 뒤표지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그 밑엔 ‘암, 여기에 답이 있다’는 말과 함께 1. 먼저 암 박사가 되자 2. 수치는 숫자일 뿐이다. 수치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3. 거리를 두고 차분히 사귀자 4. 암은 언젠가는 돌려보낼 수 있는 친구라고 여기자 5. 어설픈 대체의학을 믿지 말자 6. 항암 식품에 현혹되지 말자 등이 쓰여 있었다. 프롤로그와 책 목차, 뒤표지만 읽어도 뿌옇고 안개 가득한 내 삶의 터널 속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한 박사는 항암치료 기술이 덜 발달했던 1998년, 간에서 발견된 암덩이를 잘라낸 뒤 불과 두 달 만에 암이 폐로 전이돼 생존율 5% 미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떤 순간에도 절망하지 않았고 항암치료를 받은 뒤 자신만의 원칙을 정해 일상을 지켜나갔다. 그 결과, 그는 2017년 84살의 나이에 자신의 책 개정판 서문을 썼고, 2019년 암 진단을 받은 나는 그를 책으로 만날 수 있었다.

왜 내가 암에 걸렸을까

암 진단을 받으니 잠시 시한부 환자가 된 것 같은 착각을 했다. 그런데 선배 암 환우이자 전문가인 의사가 들려주는 암 극복법을 살펴보니 나 역시 암을 잘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조금씩 생겨났다. 그제야 유방암은 다른 암에 비해 치료 방법도 많고 치료 효과가 뛰어나며 5년 생존율도 90%가 넘는다는 정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유방암에 대해 공부나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한 박사가 권한 대로 ‘암 박사가 되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책을 고른 뒤 부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직에 빨리 이 소식을 알려야 대체 팀장도 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선배…. 제가 오늘 병원에 다녀왔는데요…. 검사 결과가 안 좋아요. 제가 암이래요. 유방암.”

“뭐라고?”

“오늘 조직검사 결과 들었고, 수술할 병원 정했어요. 수술 날짜는 아직 안 잡혔고요. 아무래도 제가 빨리 복귀하지 못할 것 같아 우선 선배께 연락드렸어요.”

놀란 선배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통화하다 보니 가슴 한구석에 잠잠하게 고여 있던 눈물이 큰 파도가 되어 밀려오는 것만 같았다. 참고 또 참고 참았지만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흐… 흐… 흐흑흑흑… 선배… 죄송해요…. 이런 일로 걱정시켜 드리고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아니야… 선아야, 진정해…. 너무 걱정 마…. 지금은 너만 생각해. 회사 걱정하지 말고. 일단 치료에 집중하자. 수술 날짜 잡히면 다시 연락줘.”

집에 돌아와 유방암 관련 책을 보니 가슴이 절제된 사진들이 수록돼 있었다. 외면하고 싶었고, 사진을 보니 무섭게만 느껴졌다. 잠시 느꼈던 희망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춰버렸다. 책에서는 유방암 발생의 위험 인자로 ①성과 나이 ②가족력과 유전인자 ③여성호르몬의 과다한 자극 ④유방치밀도 ⑤동물성 지방과 비만, 과다한 음주 등 생활환경 요인을 꼽았다.

우리나라 유방암 환자는 40대 여성에게 가장 많다는데 나는 40대다. 가족력은 없었고, 두 번의 출산과 함께 두 아이 모두 1년 넘게 모유수유를 했다. 여성호르몬의 과다한 자극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었다. 유방치밀도는 높은 편이었고, 동물성 지방 섭취나 과로, 비만 등은 해당되는 듯했다. 그러나 치밀유방이면서 나보다 동물성 지방을 더 섭취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지만 그들이 모두 암에 걸리진 않는다. 더구나 한 개의 유방암 세포가 자라서 손으로 느껴지려면 적어도 1㎝는 되어야 하고, 이론적으로는 평균 4~7년의 기간이 걸린다고 했다. 내 암의 크기는 2.5㎝라고 했으니 상당한 시간 동안 암이 자라왔다는 이야기인데, 왜 이전 건강검진에서 어떠한 낌새도 알아채지 못했는지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왜 내가 암에 걸렸는지, 왜 이제야 암이 발견됐는지 설명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2019년의 마지막 달, 그렇게 나는 청천벽력 같은 암 진단을 받았고 울고 또 울었다.

사회정책팀 기자 anmadang@hani.co.kr

양선아 기자
양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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