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 앞에서 열린 ‘전태일 추모의 달' 선포식 현장에 청년 노동자들이 서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요식업 종사자입니다. 8월 오픈해서 현재 폐업한 상태인데 임금체불 당했습니다. 책임자에게 임금지급 요구했더니 본인은 모르겠다는 입장이고 회사 대표에게 임금 언제 줄 거냐 물었더니 기다리라며 통장에 돈이 없다고 합니다. 임금 받을 수 있을까요?”(청년 노동자 ㄱ씨)
“코로나19 이후 기약 없이 급여가 삭감돼 밤샘 근무와 주말 근무를 하면서도 3개월째 겨우 최저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는 버티기 힘들어 퇴사 의사를 밝혔고 회사 쪽에 실업급여에 대해 문의했지만 상황이 어떻든 간에 자발적 퇴사이기에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청년 노동자 ㄴ씨)
15일 <한겨레>가 입수한 ‘사단법인 유니온센터’(청년유니온 부설 상담교육센터)의 ‘2020년 노동 상담 사례보고서’에 담긴 청년 노동자들의 상담 내용이다. 보고서는 노동시장에서 열악한 위치에 놓인 청년 노동자들이 올해 코로나19로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유니온센터가 진행한 노동 상담 건수는 594건(16~40살, 평균연령은 29.7살)으로 이 가운데 ‘임금체불’(61.3%) 관련 상담이 가장 많았다. 이는 지난해(343건, 2019년 1~10월) 전체 상담 건수에서 임금체불이 차지한 비율보다 10%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보고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예기치 못한 상황(사업장의 휴업, 폐업 등)이 발생함에 따라 임금체불, 실업급여 상담 건수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코로나19로 인한 청년 노동자들의 고통을 가늠해볼 수 있다. 364건의 임금체불 상담에서 가장 많았던 상담 주제는 ‘퇴직금 상담’(134건)이었다. 지난해 전체 상담에서 퇴직금 상담(17.2%)이 차지한 비율보다 5.4%포인트 증가(22.6%)한 것이다. 보고서는 “비자발적으로 퇴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휴직 기간을 포함하거나 퇴사 직전 임금 수준이 줄어들어 퇴직금 산정방식에 대해 문의하는 사례도 다수였다”고 밝혔다. 퇴직금은 퇴직 이전 3개월간의 급여를 기준으로 계산하는데, 코로나19로 휴업·무급휴가·임금삭감 등이 발생하면서 퇴직금 산정방식이 복잡해졌고 그만큼 퇴직금 관련 분쟁도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임금체불 상담에서 퇴직금 다음으로 많았던 ‘임금 미지급’(78건) 관련 상담 비율은 지난해 전체 상담에서 4.7%였는데 올해는 13.1%로 늘어났다. 지난해 17.8%이던 ‘주휴수당 미지급’ 상담 비율이 올해 12.0%로 줄어든 것과 비교된다. 임금 자체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이다. 이 밖에 무급휴가·무급휴직이 길어지며 퇴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회사가 실업급여를 거절하는 경우와 관련된 상담도 많았다.
유니온센터는 “청년 노동의 열악한 현실이 코로나19로 인해 극명하게 드러났다”며 관련 제도의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취업·재직 중인 청년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지원하고, 실업·실직 상태인 청년들의 사회안전망을 확대 및 재설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청년 노동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고용보험 지원제도의 범위와 대상도 확대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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