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 인권 단체들이 17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코로나19 장애인 확진자 긴급구제 진정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윤주 기자
“밥을 못 먹고 물도 못 마시고, 화장실을 못 가 소변통으로 해결했어요.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서울에 사는 중증장애인 ㄱ씨는 지난 16일 오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ㄱ씨는 병상 부족으로 자택에서 혼자 대기해야 했는데, 혼자서는 움직이기가 어려워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 그는 근육장애가 있어 평소 활동지원사의 보조를 받았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에 문의했지만 장애인 코로나19 확진자를 위한 별도의 활동지원 서비스는 없다고 했다.
보건소에서 가족이 활동보조를 해도 된다고 해 12시간이 지나서야 아내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ㄱ씨의 아내는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방호복을 입고 ㄱ씨의 활동을 보조하고 있다. 5평 남짓한 원룸에서 함께 생활하는 탓에 아내도 코로나19에 감염될 위험이 있다. 병원에 들어간 다음에는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공공병원 쪽에 문의하자 “활동지원사 없이 기저귀를 차고 지내야 할 수도 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지난 14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뇌병변장애인 ㄴ씨도 사정은 비슷했다. ㄴ씨는 거주 중인 포항에 입원 가능한 병상이 없어 안동으로 이송됐는데, 인지장애가 있고 왼쪽 팔과 다리를 사용할 수 없어 혼자 걷거나 균형을 잡기 어렵지만 적절한 안전장치가 없는 앰뷸런스를 타고 2시간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ㄴ씨는 공공병원의 3인실에서 다른 코로나19 확진자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남편 ㄷ씨는 병원 관계자에게 “ㄴ씨가 사람이 없을 때 복도에 나가 시시티브이(CCTV)가 없었다면 큰 사고가 날 뻔했다”며 “인력이 부족해 이렇게 통제가 안 된다면 신경안정제를 투입하거나 팔다리를 묶는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17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등 장애인 인권 단체들은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 코로나19 확진자는 방역에서 완전히 배제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ㄱ씨는 “저는 그나마 가족의 희생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혼자 사는 장애인들은 완전히 방치되는 아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ㄷ씨는 “아내는 혼자서 약봉지도 뜯지 못하는데 걱정”이라며 “경상북도청과 포항시청 등에도 수차례 문의했지만 장애인에 대한 대책은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전장연 등은 “ㄱ씨, ㄴ씨에 대한 긴급 구제와 장애인 확진자 발생 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대책 마련을 요구한다”며 보건복지부 장관, 질병관리청장, 서울시장 권한대행, 경상북도지사, 포항시장을 피진정인으로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들은 “감염병 상황에서 적절한 지원을 받는 것은 모든 국민에게 주어진 정당한 권리”라며 “감염병 확산 과정에서 장애인의 생명권이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강조했다.
단체들은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장애인 확진자 우선 입원이 가능한 병상 확보, 장애인 확진자 병상 내 생활지원인 배치,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생활치료실 확보 등을 요구한 바 있다. 이들은 “지난 2월 청도 대남병원 내 집단감염 사태와 대구시 대규모 확산 상황에서 중증장애인의 확진과 자가격리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며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한 지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정부와 지자체는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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