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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아니, 사장은 왜 ‘저런 후배’를 인정할까

등록 2020-12-20 10:03수정 2020-12-20 11:13

[토요판] 이병남의 보내지 못한 이메일
(12) 동료에게 시기심을 느낄 때

능력 있다 인정 곧잘 받았는데
잘나가는 후배 보면서 위기감

탁월하지 않은데 잘나가는 사람
인사권자에겐 그가 필요할 수도

불안감에 시기심 생기는 것 당연
왜 불안한가 돌아보는 계기 되길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Q. 회사에서 능력 있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는데, 최근 한 후배 직원을 보며 위기감을 느낍니다. 일은 완벽하게 하지만 인간관계는 서투른 저와 달리, 후배는 일도, 인간관계도 놀라울 정도로 탁월합니다. 그 모습이 부럽다가도, 이제는 두려워집니다. 그가 언젠가는 저를 밟고 올라설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후배 직원이 도움을 요청할 때면 자꾸 소극적으로 대응합니다. 그런 제 모습이 너무나 못나서 괴롭습니다.

며칠 전 그룹 인사팀장 때 함께 일했던 후배들 여러 명이 승진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세 사람은 전무, 한 사람은 부사장이 됐고, 무엇보다 20여년 제 뒤를 따라오던 후배가 마침내 사장이 됐답니다. 인사팀 출신으로는 제가 처음으로 사장이 됐는데, 저 하나로 끝날까 봐 조바심이 났었습니다. 그런데 후배가 사장 승진을 했다니 ‘아, 이제 나는 내가 할 일을 다했구나’ 싶고, ‘이젠 마음 푹 놓고 그냥 잊어버리고 살아도 되겠구나’ 하는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참으로 홀가분하고 행복했습니다. 후배들은 제가 잘 키워준 덕분이라고 인사를 하지만 저는 후배들이 잘해준 것이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대기업에서 인사 담당자로 첫발을 내디디며 느낀 것은 조직 구성원들의 이중적 정서였습니다. 대기업에 다니는 자부심도 있지만, 재벌 그룹에서 돈을 번다는 부끄러움도 있어 보였습니다. 동료들이 자신의 삶에서 보람을 찾기를 저는 바랐습니다. 이를 위해 전세계 경쟁사의 누구와 비교해도 내가 가장 뛰어나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맡은 분야가 인사·조직·노사·교육 분야이니까, 이 부문에서 후배들이 세계 최고의 수준이 되기를, 그리고 스스로도 그렇게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다양한 육성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사내 교육기관에서 전문 교육 커리큘럼을 구축해서 운영하고, 외부적으로는 이 분야 세계 최고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도록 교육파견 과정(2년)을 시행했습니다. 이번에 승진한 후배들은 거의가 이 과정을 밟고 현업에서 성과를 낸 이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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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도 배워야 한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후배나 동료의 경우 성공을 맘껏 축하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경쟁에서 오는 현실적, 심리적 위협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 경우도 동료에게 불편한 마음이 든 경우가 있었습니다. 저는 신입사원이 아니라 경력직으로 40살에 엘지(LG)그룹에 첫발을 들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가 20년 가까이 친분을 쌓은 사이라서 인간관계가 두터웠지만 저는 아웃사이더 같은 느낌이 자주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상사가 여름휴가를 갈 때면 같이 가는 다른 임원이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저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회사 운영에 대해서도 깊이 소통하는 듯했는데, 왜 휴가는 그와 갈까, 왜 나는 초대받지 못하는 것일까, 속으로 꽤나 신경이 쓰였습니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신입사원 때부터 가까이 지내온 형제 같은 사이였습니다.

그때 저는 포기라는 걸 배웠습니다. 그 오랜 시간 쌓은 인간관계는 제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영역이니까요. 그리고 사적 영역에서까지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고 너무 애쓰지는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다 잘할 수는 없다, 그 대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그것에 집중하자, 거기서 보람과 만족을 찾자’ 마음먹었습니다. 실제로 개인적 친소 관계가 성공적인 회사생활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닙니다. 그것이 능력과 성과, 인품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후배나 동료의 경우 성공을 맘껏 축하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경쟁에서 오는 현실적, 심리적 위협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후배나 동료의 경우 성공을 맘껏 축하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경쟁에서 오는 현실적, 심리적 위협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어떤 경우에는 그리 탁월하지 않은 동료가 계속 잘나가기도 합니다. 후배가 앞질러 승진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편했던 마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인사권자의 관점과 제 관점이 다르며 “시이오(CEO)에게는 저런 사람도 필요한 것이구나!”라고 인정하게 됐거든요. 회사는 많은 사람이 있으며, 최고경영자에게는 다양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나와 다른 그와 함께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동료나 후배의 성공을 마냥 축하하기가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시기심 때문이겠지요. 인간이 갖는 당연한 감정입니다. 그런데 그 시기심의 근원은 불안감이 아닐까 합니다. 내가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 감정이죠. 이 경우에 내가 과연 실제로 안전하지 않은가 하고 스스로 질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독일 음반사인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데뷔 음반을 낸 32살 한국인 소프라노 박혜상의 인터뷰를 며칠 전에 라디오에서 들었습니다. 그는 이 음반을 발매하기 전에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노래를 못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때 한 선생님이 말했답니다. “왜 ‘만일 내가 이렇게 했더라면 더 잘했을걸’이라는 가정법만으로 말하니? 그냥 ‘아이 앰(I am)…’이라는 현재형으로 그 자리를 채워봐.” 그가 당황해서 눈물을 글썽거리는데 그 선생님이 덧붙였답니다. “그다음 말은 이너프(enough)야.” ‘아이 앰 이너프(I am enough)!’ 네, “나는 나 자신으로 충분해!”라는 말이지요. 그 순간 그는 ‘아, 그동안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서 나 자신을 잃어버렸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다움을 표현함으로써 성악가로서 길을 찾았다는 감동스러운 이야기였습니다. 자기 존재에 대한 긍정과 ‘나다움’에 대한 자신감은 이처럼, 불필요한 불안감과 시기심을 날려보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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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이기적이듯 후배도 그렇다

저는 후배들이 내 자녀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아이 셋을 낳아 키우면서 실감했지만 자녀는 원래 이기적인 속성을 갖습니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저도 부모와 관계에서 이기적이었습니다. 크고 더 나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기 위해서는 이런 이기심이 반드시 필요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후배들을 따스하게 품으면서도 강하게 조련하는 것은 선배로서 의무입니다. 후배가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상처받지 않는 것 또한 선배의 책무입니다. 자녀가 이기적이라고 해서 그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없듯이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이지요. 자녀나 후배나 똑같습니다.

은퇴를 앞둔 마지막 해에 10회에 걸쳐 사내 후배들에게 강연을 했습니다. 제가 배우고 실천하면서 얻은 모든 것을 다 주고 떠나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한 후배가 물었습니다. “원장님께 저희는 무엇인가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저는 답했습니다. “자네들은 내 기쁨의 원천이고 보람의 근거일세!” 그랬습니다. 혼자만의 힘으로 성과를 내고 인정을 받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동료들의 협조로, 무엇보다 후배들의 헌신으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가요!

탁월한 후배를 만나, 그 후배가 신경 쓰이고 때로는 시기심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삶에서 보람이, 행복이 어디에서 생겨나는지 생각해보면, 그 후배를 만난 것이 행운일 수 있습니다. 오늘 말하십시오. “자네는 내 기쁨의 원천이고 보람의 근거일세!”

▶ 이병남.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조지아주립대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다 1995년 엘지(LG)그룹 임원으로 입사해 인사, 교육, 노사관계 및 지배구조 업무를 맡았다. 2008년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인화원장으로 부임해 8년간 원장직을 수행하고 2016년 퇴임. 인간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지만 이를 풀어낼 해법 역시 인간에게서 비롯된다는 그의 경영 철학은 저서 <경영은 사람이다>(2014)에 담겼다. 인간 존중이라는 경영의 본질을 잊지 않고 21년간 숨 가쁘게 현장을 누벼온 그가 일터에서 겪는 우리의 고민을 함께 나눈다. 4주에 한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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