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 환자를 진료하는 김영환 중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장.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eyeshoot@hani.co.kr
골반이 통째로 으스러졌다. 공사 현장에서 후진하는 5t 트럭에 깔렸다. 대학병원에 실려 갔지만 아예 입구에서 진료를 거부당했다. 다른 대학병원은 응급처치만 한 뒤 국립중앙의료원으로 보냈다. 이 환자를 살리려고 김영환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장은 한달 넘게 애쓰고 있다. 2020년 12월26일 오전에는 서른번째 수술을 마쳤다.
교통사고, 추락 등으로 크게 다친 중증외상 환자에게 “서울은 지옥”이라고 김 센터장은 말했다. 중증외상 환자 받기를 꺼리는 병원들을 구급차를 타고서 ‘뺑뺑’ 돌아야 하는 탓이다. 중증외상 환자와 119구급대한테 국립중앙의료원은 ‘최후의 보루’ 같은 곳이다. 폭행이나 자해 등으로 다친 노숙인과 행려인들도 이 병원의 문을 두드린다. 코로나19 유행 뒤로 외상센터 응급실을 찾는 환자는 더 많아졌다. 다른 병원 응급실 문턱이 높아진 탓이다. 김 센터장은 “응급실에 오더라도 코로나 진단검사에서 음성이 나와야 해서 적절한 치료가 늦어지는데다, 아예 병원 ‘입구컷’(입구에서 거부되는) 환자도 많다”고 말했다.
공공병원의 사회적 책임은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대응만이 아니다. 국립중앙의료원을 이용하는 환자 넷 중 한명은 의료급여 환자, 노숙인 등 취약계층이다. 2019년 11만5407명의 의료급여 환자가 병원에서 진료받았다. 노숙인과 행려환자 비중도 전체 환자의 1~2%가 된다. 현재도
의료급여 환자 39명을 포함해 모두 177명의 일반 환자가 병원에 입원 중이다. 중증외상 환자는 20명, 이 가운데 생명이 위독한 중환자만 5명이다. ‘병원을 통째로 비우고 코로나19 진료에 전념하라’는 일부 목소리가 있음에도, 병원 쪽이 쉽게 입원 환자들을 내보내지 못하는 이유다.
코로나19 유행 초반에 62일간 일반 병실을 비우면서 의료 공백이 이미 생겼다. 2020년 1월~12월27일 이 병원을 찾은 노숙인 환자는 3809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7778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행려환자는 고작 230명으로, 2019년(2216명)의 10분의 1 수준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계층을 가리지 않지만, 의료 공백의 피해는 어떤 계층에는 치명적이다. “누구도 보지 않는 중증외상 환자, 노숙인 같은 사회적 약자 수백명을 버릴 수는 없잖아요.”(김영환 외상센터장)
황예랑 방준호 <한겨레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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