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한겨레> 자료 사진.
1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상고심 선고를 끝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건넨 86억원이 뇌물이라는 사실이 사법적 판단으로 최종 확정됐다. 그러나 오는 18일 파기환송심 선고를 앞두고 있는 이 부회장은 대법원의 뇌물 판결 취지를 부정하며 선처를 호소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 심리로 열린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 결심 공판에서 이 부회장 쪽은 재판부에 감형을 요청하며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건넨 금품은 박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적 요구에 의한 ‘수동적’ 지원이었고 △위법·부당한 직무집행을 요청한 적이 없으며 △특혜를 받은 사실도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 ‘피해자’로서 뇌물의 대가로 꼽혔던 경영권 승계작업을 두고도 “승계작업 자체가 위법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유죄를 확정한 대법원 판결에 어긋난다. 대법원은 최씨 사건에서 “이재용은 대통령 요구에 적극 응하기로 한 뒤 2015년 7월 최지성, 장충기, 박상진에게 대통령이 원하는 사항을 모두 충실히 이행할 것을 지시했다”고 판단했다. 이날 확정된 박 전 대통령 판결에서도 “(삼성의) 영재센터 지원은 대통령 직무집행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부르기 충분하다. 후원하는 입장인 삼성이 오히려 영재센터 지원을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고 피고인이 요구하는 후원금액을 무조건 지급했다”고 했다. 이 부회장 또한 적극적으로 뇌물을 제공했다는 판단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도 “‘요구형 뇌물’에 해당한다 해도 공여자 쪽에서 뇌물요구에 ‘편승’해 상호 윈윈을 추구하는 경우라면 적극적·능동적 뇌물공여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법·부당한 직무집행을 대통령에게 요청한 적이 없다’는 이 부회장 주장에 대해서도 박 전 대통령 판결은 “특정 대기업 집단의 경영권 승계작업을 돕기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사용해달라는 취지의 청탁은 그 자체로 사회상규나 신의성실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경영권 승계작업에 도움을 달라는 청탁 자체의 부당성을 명시한 것이다. 대법원 판단을 따르면, 이 부회장에게 감형이 가능한 게 아니라 ‘적극적 증뢰’, ‘청탁 내용이 불법하거나 부정한 업무집행과 관련된 경우’에 해당돼 가중 요소가 되는 셈이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대법원 판결을 의도적으로 오독하거나 판결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 부회장 쪽 변호인은 “(대법원이 인정한) 이 부회장의 묵시적이고 부정한 청탁이 곧 청탁 내용의 위법성까지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뇌물 사건은 이 부회장 쪽에서 먼저 나서 시작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동적이라고 본 것이다. 대통령의 직무집행을 통해 승계작업 등의 혜택을 본 것도 없다”고 말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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