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지난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그룹 차원의 삼성전자서비스센터 노조 와해 전략 수립과 실행에 가담하며 ‘삼성의 2인자’로 꼽혔던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의 무죄가 확정됐다. 1심에서 이 전 의장의 혐의를 유죄로 이끌었던 증거를 대법원이 ‘위법수집증거’로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4일 노동조합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이 전 의장과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 등 32명의 상고심에서 피고인들과 검찰 상고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고 원심을 확정했다.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던 이 전 의장은 2심에 이어 상고심에서도 무죄를 받았고, 강 부사장은 징역 1년4개월이 확정됐다. 원기찬 삼성라이온즈 대표는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정금용 삼성물산 대표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박용기 삼성전자 부사장은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았다. 노조 와해에 관여해 뇌물을 수수했던 전직 경찰, 노조 대응 전략을 조언해준 노무사도 각각 징역 2년, 징역 10개월이 확정됐다.
이 전 의장의 혐의가 항소심에서 뒤집힌 건 노조 와해 전략이 이 전 의장 쪽에 보고된 것을 입증하는 ‘경영지원실장(CFO) 보고’ 문건 등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는 대법원의 최종 판단 때문이다. 대법원은 문제의 보고 문건이 담긴 삼성전자 인사팀 직원의 하드디스크는 영장에 기재된 수색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에 따라 관련 문건에 기초한 진술도 증거능력이 모두 사라지면서 이 전 의장의 공모를 입증할 증거가 상당수 무효가 됐다.
일부에서는 적법절차의 원칙과 실체적 진실의 조화를 추구하는 차원에서 보고 문건의 증거능력을 무효화하면 안 된다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압수수색이) 영장의 장소적 효력 범위에 위반해 집행됐고, (해당 증거는) 영장 제시 의무를 위반하는 등 적법절차의 실질적 내용을 침해해 취득한 증거다. 예외적으로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며 2심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삼성전자서비스와 협력센터 간 불법파견 여부는 따로 판단하지 않았다. 파견법 위반으로도 기소된 박상범, 최우수 전 삼성전자서비스 대표가 원심에서 파견법 위반의 ‘고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를 받았기 때문에 삼성전자서비스와 협력업체 수리기사들 간 근로자 파견관계 문제는 따로 심리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다만 1심과 2심의 결론은 엇갈렸다. 1심은 협력업체가 삼성전자서비스의 하부조직처럼 운영된 것으로 보고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그러나 2심은 각종 노조 와해 행위를 한 삼성전자서비스가 부당노동행위의 주체인 ‘사용자’인 것은 맞지만 파견 관계로 묶인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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