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앞두고 동대구행 기차표를 구하지 못한 ㄱ(33)씨는 최근 고속버스 예매를 알아보다 고민에 빠졌다. ‘매진’ 표시가 뜬 버스가 많았고, 잔여석이 몇석 안 되는 버스를 택하려니 ‘거리두기’가 신경 쓰였다. ㄱ씨는 “기차는 창가 좌석만 예약을 허용해 그나마 안심이 되는데 4시간 넘게 많은 사람과 버스에 머무른다는 생각을 하니 부담돼 일단 예약만 걸어두고 상황을 지켜보려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설 연휴 기간까지 5인 이상 집합금지를 연장한 가운데, 기차는 거리두기가 이뤄지지만 300여대의 고속버스는 차 한대에 승객을 가득 채우고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버스 이용 시 마스크 착용 등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겨레>가 7일 ‘전국고속버스운송사업조합’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설 연휴 첫날 고속·시외버스 예매율은 22.5%(5일 기준)로 집계됐다. 집합금지로 귀성을 자제하다 보니 지난해 설 연휴 첫날(69.8%)에 견줘 낮은 수치다. 그러나 연휴 첫날 운행되는 고속버스 중 316대(프리미엄 139대, 우등 165대, 일반 12대)는 좌석이 전부 매진(5일 기준)된 것으로 나타났다. 탑승 인원만 약 8천명에 이른다. 지난 5일 기준 설 연휴 첫날 ‘서울→대구·동대구’, ‘서울→부산·서부산’ 노선 예매율은 각각 72%, 52%로 집계됐다. 설 연휴가 다가오며 예매율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예매 좌석을 절반으로 줄인 기차표가 빠르게 매진되면서 교통편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좌석 예약에 제한이 없는 고속버스로 눈을 돌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고속버스 업계가 경영상의 이유로 주요 노선을 운행하는 버스 수를 줄이며 버스 안 ‘밀집도’도 올라갔다.
한국철도공사는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때 적용하는 ‘승차권 50% 이내 예매 제한’을 선제적으로 시행했지만, 고속·시외버스는 현 단계(수도권 2.5단계, 비수도권 2단계)에 맞춰 예매 시 창가 쪽 자리 선택을 ‘권고’만 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철도공사는 공기업이라 자발적으로 방역조처에 협조하고 있지만 고속버스회사는 민간이 운영하다 보니 정부가 (창가 쪽 좌석 배정을) 강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에 탑승할 때 다른 승객과의 간격을 2m 이상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매진 버스에서는 ‘거리두기’가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만원 버스에 타지 않는 것이 제일 좋지만, 어쩔 수 없이 타야 한다면 방역수칙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버스 내 물건을 만지지 말고, 버스 탑승 전후에 손을 꼭 씻기 등을 권고한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예방의학과 교수는 “국내에선 아직 버스 내 감염 사례가 없지만, 외국에는 승객이 마스크를 쓰지 않아 버스에서 감염된 사례가 있었다”며 “절대 마스크를 벗으면 안 된다. 타인과 접촉을 최대한 줄이고 버스 내 환기를 통해 외부 공기가 유입되도록 조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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