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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전세보증금 사고 5년새 169배 급증…“제도적 안전망 시급”

등록 2021-02-23 04:59수정 2021-02-23 08:14

갭투기 주택 세입자의 눈물
(하) 정부·국회가 대책 세워야
갭투기 폭탄이 터지고 있다
가압류·경매도 해결책 못돼
벼랑끝 피해자들 “구제” 호소
‘이상 거래’ 감시시스템 도입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 전봇대에 `전세가가 매매가보다 비싸다'며 갭투자를 권하는 부동산 홍보물이 붙어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 전봇대에 `전세가가 매매가보다 비싸다'며 갭투자를 권하는 부동산 홍보물이 붙어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수많은 피해자들이 내집 마련의 꿈은커녕 한순간에 생존까지 위협받게 된 게 모두 개인의 불운일 뿐인지, 부동산 정책과 제도를 책임지는 정부와 국회에 묻고 싶습니다.”

22일 ‘갭투기대응시민모임’(시민모임)이 공개한 서울과 수도권 갭투기 피해자 108명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한겨레> 2월22일치 1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이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몇년 사이 갭투기 피해자는 급증하고 있지만 이들을 지켜줄 제도적 안전망은 여전히 성기다. 피해자들 대부분 전세 계약 당시 꼼꼼히 서류를 챙기고 제반 사항을 확인하지만, 갭투기꾼들의 ‘은밀한 거래’에 쉽게 희생양이 된다. 이들은 “이제부터라도 확정일자나 전입신고만으로도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이 보장되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호소한다.

전세보증금 사고 5년 새 169배 증가

갭투기 피해 실태는 임대인이 전세보증금반환보증(전세금반환보증)에 가입한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제때 되돌려주지 못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허그)가 대신 전세보증금을 돌려준 ‘보증사고’ 현황을 보면 알 수 있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허그로부터 받은 ‘주택유형별 전세금반환보증 현황’을 보면, 2016년 26억원(23건)에 불과했던 대위변제(허그가 임차인에게 대신 전세금을 지급한 뒤 임대인에게 청구하는 방식) 금액(건수)은 2018년 583억원(285건), 2020년 4415억원(2283건)으로 늘어 5년 사이 169배가 되었다. 특히 지난해 다세대주택 대위변제 금액(건수)은 2189억원(1104건)으로 아파트(1722억원·867건)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아파트 보증사고는 2019년을 기점으로 줄어들고 있지만, 다세대주택의 경우 갭투기가 유행하면서 보증사고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다세대주택에서) 대위변제가 갑자기 늘어나면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한 상황인 것은 맞다”고 말했다.

보증사고는 늘고 있지만 정작 허그가 다주택을 보유한 갭투기꾼에게 돈을 돌려받는 경우는 많지 않다. 허그는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보증사고 상위 30위 임대인의 보증사고 금액 1755억원 중 1575억원을 대위변제해줬지만 이 중 130억원만(회수율 8.3%) 회수했다. 허그 관계자는 “다주택 채무자는 채권 회수가 어려워 소송이나 경매 등의 법적 절차를 밟아 일반 임대인에 견줘 회수 시간이 더 소요되는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얽히고설킨 피해

허그가 갭투기꾼의 주택에 가압류를 걸고 경매를 넘기면 갭투기 피해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갭투기꾼이 소유한 여러 곳의 다세대주택에는 전세금반환보증 자격이 되지 않거나 가입을 하지 않고 살고 있는 임차인이 많기 때문이다. 허그가 ㄱ이라는 피해 임차인의 대위변제를 위해 갭투기꾼이 소유한 다른 모든 주택에 가압류를 걸 경우 전세금반환보증에 가입하지 않은 ㄴ, ㄷ, ㄹ 등의 임차인들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주택이 가압류에 걸리면 임차인들이 뒤늦게라도 전세금반환보증에 가입하려 해도 불가능하다.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다세대주택 특성상 여러 차례 유찰되면서 가격이 내려가 임차인들이 전세보증금을 전부 보전받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이는 국토부와 허그가 다세대주택 대위변제를 위해 가압류와 경매를 신중히 결정하는 이유다. 국토부 관계자는 “보증사고와 관련된 주택에 거주하는 모든 임차인의 안전을 고려하면서 갭투기 해결책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모임의 설문조사를 보면, 82.4%(89명)가 전세금반환보증에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가입하지 못한 이유를 묻는 말(중복 응답)에 24명이 ‘임대인 문제’를 꼽았다. 이밖에 37명이 임대 매물 문제(근린생활시설·불법증축 등)로, 45명이 ‘기타’ 사유로 전세금반환보증을 신청하지 않았다. 조사를 진행한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는 “다세대주택 등을 겨냥한 갭투기 피해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전에 계약을 하다 보니 전세금반환보증 필요성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제도 자체를 잘 몰라서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임차인 알 권리 보장부터”

시민모임은 △갭투기 매물 정부 환수 또는 공공임대 전환 △임차인 주택 매수 시 정부·지자체 실무 지원 △전세대출 상환 못한 임차인들 구제 등을 요구한다. 특히 사전에 아무리 꼼꼼히 살펴보고 계약해도 ‘갭투기꾼’으로 집주인이 바뀌는 상황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실을 고려해 ‘임차인의 알 권리’를 정부가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간임대주택법 개정으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임대사업자는 계약시 부채, 체납사실 등을 임차인에게 고지하고 확인받아야 한다. 그러나 임대인이 계약 도중 바뀔 경우 임차인에게 이를 고지해야 할 의무는 없다. 또 임대인이 관리하는 다른 주택에서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은 사실도 임차인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문제가 있는 집주인으로 임대인 변경이 이뤄지는 ‘이상 거래’를 제때 접한다면 임차인들이 계약 해지 등의 방법으로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구름 빅밸류 부동산빅데이터연구소장은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갭투자 기획파산은 사전에 ‘사기 행위’를 단속하거나 예방할 수 있는 법률적 방법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데이터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이상 거래에 대한 실시간 감시 시스템을 도입하고, 세입자들에게 위험을 알릴 수 있는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국토교통부는 임차인에게 계약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임대인의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우려를 표시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임대인의 신용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 권한이 없고, 있다 하더라도 개인정보보호법상 임차인에게 임대인의 재산 현황을 알려줄 수는 없다. 임차인이 확정일자를 받고 전입신고를 하면 임차권이 형성되는데 임대인의 다른 재산정보를 추가로 제공하는 것은 개인정보 침해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피해 임차인들은 또 허그와 같은 보증기관이 임대사업자로 등록하지 않은 임대인을 상대로 전세금반환보증 가입을 의무화하거나 ‘전세보증금 지급능력’도 함께 심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허그 관계자는 “임대인의 지급능력은 사전(보증사고가 터지기 전)에 평가해야 하는데 신청 당시와 신청 이후의 지급능력이 다를 수 있다. 임대인의 능력까지 심사한다면 오히려 임차인에게 보증 문턱이 더 높아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입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은 임대사업자의 신용정보를 국토부가 지자체와 허그 등에 제공해 임차인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민간임대주택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임대사업자 사이에 거래가 이뤄지면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지자체가 임차인에게 변동 사실을 알려주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소 의원은 임대보증금의 반환을 거부해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한 자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형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두 법안 모두 현재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전문가들 “매맷값의 70% 넘는 전세금은 위험…반환보증보험 가입이 최선”

현행 제도에서 임차인들이 갭투기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뾰족한 수’는 없다. 매맷값과 전세금의 차이가 크지 않은 매물은 피하거나 전세보증금반환보증(전세금반환보증) 상품에 가입하는 게 최선이다.

전문가들은 다세대주택 매맷값 대비 전세금이 구축 빌라(오래된 빌라)의 경우 60~70%, 신축 빌라는 70~80% 이하가 적절하다고 보고 있다. 박원갑 케이비(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신축 빌라는) 깡통전세(매맷값이 전세금보다 낮아 집을 팔아도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운 경우) 문제 때문에 전세금과 집주인의 대출금을 합친 액수가 집값의 80%를 넘으면 임대차 계약을 하지 말아야 한다. 계약하게 되더라도 반전세나 월세로 들어가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매물과 관련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서울의 경우 ‘서울 부동산 정보광장’ 누리집에서 부동산 공시가격(개별공시지가·개별주택가격)과 실거래가(매매·전월세)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부득이 전세금과 매맷값이 비슷한 주택에 거주해야 한다면, 전세금반환보증 상품에 가입하거나 전세권을 설정하는 등의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최악의 경우 살던 집을 경매로 낙찰받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으니 전세금반환보증 상품에 가입하는 게 제일 좋은 방안이고, 이게 어렵다면 집주인의 동의를 받아 전세권 설정 등기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에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임대인의 집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법 개정에 따라 올해 8월18일부터 임대사업자는 신규 또는 갱신 임대차 계약 체결 시 전세금반환보증 상품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보험료는 임대인과 세입자가 각각 75%, 25% 나눠 낸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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