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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검찰주의자’ 윤 총장, 조직 존립 위기감에 전면 나선 듯

등록 2021-03-02 20:21수정 2021-03-03 14:51

수사청 추진에 공개 반발, 왜?
①검사들 실명 비판글에 압박 느낀 듯
②임기 넉달 남아…‘잃을 게 없다’ 승부수
③여권의 수사청 속도전도 ‘등판’ 명분
윤석열 검찰총장이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중대범죄수사청(수사청) 신설을 강하게 비판하며 전면에 나선 배경에는 ‘검찰 조직의 존립 위협’이라는 내부 위기감이 깔려 있다. 오는 7월 퇴임을 앞둔 윤 총장 개인으로서 더는 잃을 게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권 내 수사청 신설 ‘속도전’이 윤 총장 등판에 명분을 준 측면도 있다.

■ 검찰 내부 “존립 우려”…총장 등판 압박 거세져

검찰 내부는 수사청 신설을 통해 ‘수사-기소 완전분리’를 이루려는 여당의 이른바 ‘검찰개혁 2단계’를 사실상 ‘검찰 해체’로 받아들이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에 남겨진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산업·대형참사)의 직접 수사권까지 수사청으로 넘어가면, 검찰은 영장 청구와 기소권만 가지는 사실상 ‘껍데기’ 기관으로 전락한다는 게 일선 검사들의 시각이다. 이번 사안을 ‘추미애-윤석열 갈등’ 때처럼 권력 충돌의 문제가 아니라, 검찰 조직 자체의 존립 문제로 받아들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방검찰청의 한 차장급 검사는 “수사와 재판을 통해 사회정의를 실천하려고 검사가 됐지, 다른 기관이 수사한 기록을 넘겨받아 재판만 하려고 검사 된 이들이 과연 있겠는가”라고 반문한 뒤, “이 법안이 통과되고 수사청이 신설되면 검사들이 줄사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사-기소 분리로 공소유지에 어려움이 생길 거란 우려도 강하다. 한 검찰 간부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 합병·승계 의혹’ 사건의 경우 수사기록만 20만쪽에 달한다”며 “대형 금융 사건이나 권력 비리 사건은 수사 과정을 모르면 재판 대응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검사도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폐지하면 소추가 어렵고,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는 결론을 내리기 어려워 재판에서 무죄가 나올 공산이 크다.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다수의 검사가 실명으로 여당의 입법안을 비판하고 나서면서 윤 총장이 조직 수장으로서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는 시각도 있다. 지난주부터 검찰 내부망에는 박철완 안동지청장, 구승모 대검 국제협력담당관, 성기범 서울중앙지검 검사 등의 ‘수사청 신설이 우려된다’는 실명 비판 글이 확산하고 있다. 여당의 입법 움직임에 윤 총장이 나설 것이란 전망은 일찌감치 있었지만, 수사청 설치에 대한 검사들의 내부 압박이 거세지면서 총장의 메시지가 한발 앞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 “검찰주의자, 임기 말 잃을 게 없다”

검찰 안팎에선 윤 총장의 이번 발언이 ‘정치적 계산’보다는 철저한 ‘검찰주의자’로서의 행보의 연장선에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사들은 모두 검찰 조직에 대한 애착이 있다. 검찰이 수사하지 않으면 부실수사가 될 수 있다거나 기존에 진영을 가지지 않고 똑같이 충실히 수사해왔다는 (윤 총장) 발언을 봐도 ‘검찰이 옳다'는 엘리트 의식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검찰총장 임기 때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모든 수사권을 빼앗겼다는 비판을 받고 싶은 총장이 어디 있겠는가”라며 “명예를 중시하는 ‘검찰주의자’ 윤 총장이 자신의 명예와 조직의 명운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더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기가 넉 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더는 잃을 게 없다는 점도 윤 총장의 강한 반발을 가능케 한 요인으로 꼽힌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른바 ‘추-윤 갈등’으로 대선주자로 급부상한 윤 총장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이제 더 잃을 것도 없다”며 “장관과의 갈등으로 옷 벗은 총장보다, 검찰 조직을 위해 직을 내건 총장이 더 낫지 않나. 검찰 조직을 위해 직을 내건 기존 총장들의 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 총장들도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 등 검찰 조직의 주요 사안과 관련해 총장직 사퇴나 강경 발언 등으로 대응한 전례가 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송광수 당시 검찰총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당시 정치권을 중심으로 중수부 폐지가 논의되자 “(폐지하려면) 내 목을 (먼저) 치라”고 반발해 뜻을 관철했다.

■ “수사권 조정 두 달 만에 입법 속도전 빌미”

한편에선 윤 총장의 대응은 법조계의 반발 여론을 등에 업은 여론전 성격이 짙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법조계를 중심으로 “수사-기소 분리라는 장기적 방안에는 공감하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 두 달 만에 새로운 입법은 사법시스템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여론이 강하기 때문이다. 김한규 전 서울변호사회장은 “새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도 전에 여당이 수사청을 만들겠다고 발표하면서 이미 갈등은 예견돼 있었다”며 “정부 역시 새로운 사법시스템의 시행착오를 보완하기 위해 힘을 쏟아야 할 시기에 소모적인 정치적 갈등에 휩싸이게 됐다”고 지적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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