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 만에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불법승계’ 혐의 재판에서 검찰과 변호인단이 치열한 법정공방을 펼쳤다. 양쪽은 이 부회장의 혐의뿐 아니라 변론 방식, 공판 일정을 두고도 ‘기 싸움’을 벌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박정제 박사랑 권성수 부장판사)는 11일 제일모직·삼성물산 불공정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부정회계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 부회장 및 삼성 계열사 임원 10명에 대한 2회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공판준비기일은 정식 재판에 앞서 검찰과 변호인이 쟁점사항을 정리하는 절차로, 이 부회장 등 피고인은 이날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검찰은 이날 1시간에 걸쳐 이 부회장이 그룹 승계 핵심인 삼성전자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불공정합병 및 회계부정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의 승계를 위해 미래전략실이 작성한 승계계획안인 ‘프로젝트 지(G)’에 따라 ‘총수일가의 지분이 높은 에버랜드 상장→제일모직으로 사명 변경→제일모직과 삼성전자 지분이 높은 삼성물산을 합병’하는 작업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총수일가 지분이 높은 제일모직의 가치는 높게, 삼성물산의 가치는 낮게 평가받는 것이 유리하므로 삼성은 △제일모직의 호재와 삼성물산의 악재를 선별적으로 공개해 1:0.35(제일모직:삼성물산)라는 삼성물산에 불리한 비율로 양사를 합병하고, △합병 당시 제일모직의 자회사 삼성바이오가 자본잠식 상태였다는 점을 감추기 위해 삼성바이오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의 가치를 ‘뻥튀기’하는 회계부정을 저질렀다는 게 공소사실의 뼈대다.
변호인단은 4시간 넘게 검찰의 주장에 반박했다. 이 부회장 쪽은 제일모직이 고의로 고평가되고 삼성물산이 저평가됐다는 검찰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당시 삼성물산은 자회사 삼성엔지니어링 부실 및 건설경기 하락으로 삼성물산의 주가는 우하향하고 있었고, 제일모직은 바이오산업 성장에 힘입어 가치가 올라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삼성에피스의 가치를 부풀렸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회계 처리 기준 변경에 따른 것으로, “검찰은 삼성바이오가 4조5천억원대 대규모 분식회계를 했다고 하지만 삼성바이오 가치가 4배 이상 올랐다. (회계부정이 맞는다면) 시장 참여자가 바보여서 이런 삼성바이오에 투자하겠느냐”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검찰과 변호인단은 공소사실뿐 아니라 변호인단의 변론 방식, 일정 문제를 두고도 언쟁을 벌였다. 변호인단이 변론 피피티(PPT)에서 신문기사 등을 인용하자 검찰은 ‘검찰이 증거 신청한 언론기사는 (피고인 쪽이) 부동의하지 않았나, 공판준비기일이라지만 증거조사도 이뤄지기 전인데 언론기사를 변호인단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처럼 제시하는 건 부적절하다’며 언성을 높였다. 이에 이 부회장 쪽이 ‘검찰은 엄격한 증거조사에 따라 유죄를 입증해야 하지만 변호인은 그런 제약이 없다, 참고자료일 뿐’이라는 취지로 항변하자 재판부는 “검찰 주장에도 일리가 있으니 적절히 넘기면서 하라”고 중재하기도 했다. 차후 공판기일에 대해서도 검찰은 “(신문해야 할) 증인이 250명”이라며 주 2회를 요구했지만, 변호인은 충실한 준비가 필요하다며 격주 1회를 요구했다. 이에 재판부는 “5월까지 격주로 진행하되 6월부터 매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 등 피고인이 출석하는 첫 공판은 오는 25일에 열린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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