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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하루 만에 오락가락 ‘호중구 수치’ 천국과 지옥 오가네

등록 2021-03-20 13:49수정 2021-11-06 15:33

[토요판] 양선아의 암&앎
(7) 호중구

백혈구 과립구 95% 구성하는 호중구
수치 낮으면 감염의 위험성 높아져
항암제 맞지 못하고 치료 밀리기도

1차 항암 뒤 보름 지나 최저치 기록
전투하듯 먹었는데 보람없어 배신감
환자 마음에 공감하는 의사말 ‘보약’

‘고난 낭비하지 말라’는 말에 기운
욱신욱신한 통증에 식은땀 흘린 뒤
하루 만에 550에서 6500대로 ‘껑충’
수치로 울고 웃는 롤러코스터 인생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가수 김호중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호중구. 혈액 검사지에서 에이엔시(ANC)로 표기되는, 항암하는 내내 귀가 닳도록 듣게 되는 이 단어에 대한 얘기다. 처음 이 용어를 들었을 때 너무 낯설었다. ‘도대체 호중구가 뭐야?’ 

호중구 수치가 1501에서 180으로

 국립암센터 암용어사전을 찾아보니 “호중구는 백혈구의 한 종류로, 감염이 있을 때 균과 싸우는 일을 한다”고 했다. 우리 핏속에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이라는 성분이 있고, 적혈구는 산소 운반, 백혈구는 면역 기능, 혈소판은 지혈 기능을 담당한다는 정도는 나도 상식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면역을 담당하는 백혈구 세포가 과립구, 림프구, 대식세포 세 종류로 나뉘며, 과립구의 약 95%가 호중구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은 암 치료 중 백혈구에 대해 공부하면서 알게 됐다. 호중구 수는 감염, 염증, 백혈병, 항암제 등으로 변화할 수 있으며 호중구 수치가 낮으면 감염 위험성이 높아지고, 수치가 500 미만일 경우 위험성이 더 높아진다고 했다.

 “양선아님~, 호중구 수치가 180이 나왔어요. 지금부터 병실에서 그대로 계셔야 합니다. 감염이라도 되면 큰일 납니다. 침상에서도 마스크를 쓰시고, 오늘 예정된 치료는 모두 취소됩니다. 오늘은 무조건 안정을 취하세요. 다른 검사 결과까지 나오면 상담할게요.”

 1차 항암으로 보름 정도를 고생한 뒤 고주파 온열요법과 면역력 보강을 위해 암치료 전문 한방병원(한방병원이지만 양·한방 통합치료 가능)에 입원했다. 오전 6시, 서투른 간호사가 혈관을 터트리며 피를 뽑더니 혈액검사 결과도 내 뒤통수를 후려쳤다. 오전 10시 반께 호중구 수치가 확인되자마자 담당 의사가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병실로 달려와 내게 말했다.

 “네? 180이요? 5일 전, 본 병원에서 호중구 수치는 1501이었고, 의사는 더는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요?”

 “그럴 수 있어요. 일단 모든 검사 결과가 나오면 다시 설명해드릴게요. 어디 가시면 안 되니 달려와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무조건 안정을 취하세요.”

 병원에 들어오자마자 소변검사와 피검사를 했다. 소변을 너무 자주 보니 방광염이 걱정돼 소변검사를 했고, 간 수치나 호중구 수치 등을 의사가 확인해야 한다며 피검사를 했다. 불과 5일 전만 해도 본 병원에서 호중구 수치가 1501이 나와 ‘백혈구 촉진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된다고 좋아했던 나였다. 의사들이 제시하는 호중구 정상수치는 1800~7000인데, 항암할 땐 1000~1500 정도를 마지노선으로 본다. 다행히 내 호중구 수치는 1000 밑으로는 떨어지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쉰 직후였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보통 항암 주사를 맞고 난 뒤 7~10일 호중구 수치가 최저치를 기록해요. 그래서 본 병원에서도 그 시기에 맞춰 피검사를 한 것이고, 그때 양선아님 수치는 괜찮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분과 다르게 양선아님은 보름 정도 지나서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 거죠. 이게 패턴인지 잘 관찰할 필요가 있고, 앞으로 항암 하면서 이 부분 예의주시하고 대처를 잘 해나가면 됩니다. 오늘 백혈구 촉진 주사를 맞고 내일 다시 피검사를 할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마음 편하게 가지시고 오늘은 무조건 안정을 취하세요. 촉진제 주사를 맞으면, 으슬으슬 몸살기가 있을 수도 있고 열이 날 수도 있고 몸이 뻑적지근할 수도 있는데요. 그런 증세가 있으면 바로 말씀하시면 약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차분하고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의사 앞에서 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항암 전 4700이었던 내 호중구 수치가 항암 후 열흘이 지나 1501로 떨어지더니 보름이 된 날엔 180까지 떨어진 것이다.

 “선생님, 혹시 제 혈액과 다른 사람 혈액 수치가 바뀐 것은 아니죠? 어떻게 5일 만에 이렇게 형편없게 수치가 떨어질 수 있을까요? 지난 5일 동안 전 백혈구 수치 올리겠다고 매끼 장어에 오리고기에 소고기까지 단백질 섭취 집중적으로 했거든요. 닭발즙도 좋다고 해서 먹었고요. 그런데 이렇게까지 떨어지는 게 이해가 안 돼요. 열이 나거나 특별히 증상이 있지도 않았거든요.” 나는 의사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오늘 병동에서 피검사는 양선아님뿐이었어요. 그래서 바뀔 혈액도 없고요. 양선아님 수치 맞아요. 항암제가 골수 기능을 파괴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원인은 항암제죠.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안 오르는 분 있어요. 내 골수 기능이 이 정도구나 알고 계시고 대처하면 됩니다. 일단 감염 위험을 차단하고, 촉진제를 맞아 대처하면 됩니다. 병원에 오시길 정말 잘했네요. 항암 스케줄 밀릴 뻔했어요.”

의사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치료제

 병원에 오지 않았다면, 중간검사 결과만 믿다 정작 항암 당일에 백혈구 수치가 낮아 항암제를 맞지 못할 뻔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전투하듯 먹었는데 호중구 수치가 바닥이라는 것에 배신감이 들었고,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또 한번 마음이 무너졌다.

 머리카락이 숭덩숭덩 빠져 비가 내렸던 마음에 호중구 수치 결과로 또 한번 소낙비가 내렸다. 격리된 병실에서 나는 울고 또 울었다. 의사를 봐도, 남편을 봐도, 엄마 전화를 받아도, 후배 전화를 받아도 눈물만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백혈구 촉진제 한 방이면 호중구 수치가 수직상승 곡선을 그리는데 왜 그렇게 애를 태웠는지 모르겠다. 이후 나는 여덟번의 항암을 하면서 매번 백혈구 촉진제를 맞았다. 백혈구 촉진제가 없었다면 아마도 내 항암 스케줄은 계속 미뤄졌으리라. 환자에게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므로 백혈구 촉진제 같은 기막힌 약물을 개발해낸 연구진과 제약사에 경의를 표한다.

 본 병원 의사와 면담 시간은 길어봐야 5분이지만 한방병원에서는 의사 면담을 30분 넘게 한다. 의사는 내가 궁금한 부분에 대해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해줬다. 비급여 항목 치료가 많아 치료비가 비싼 만큼 암 치료 전문 한방병원 의사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은 높은 편이다. 담당 한의사는 상담 중 내가 눈물을 보이자 충분히 울 수 있도록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의사는 또 “지금은 울지만 백혈구 촉진제 맞으면 호중구 수치도 오르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예쁜 ‘비니’(삭발 머리에 쓰는 모자) 없나 하고 인터넷 검색하는 자신의 모습을 맞이하실 거예요”라고 말해주는가 하면, 격리된 병실에서 후배가 보내준 책을 읽고 있는 내게 “봐요~~, 이렇게 응원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힘내셔야죠~”라며 격려해주었다. 환자의 마음에 공감하는 의사가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내게는 ‘보약’이고 ‘치료제’였다.

 ‘걸을 힘만 있으면 걷자’고 생각했던 나는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 신체 기능을 활성화해 항암을 이기려 했는데, 호중구 수치가 바닥을 보이면서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백혈구 촉진제를 맞으니 몸이 사방팔방 아팠다.

 쾅쾅쾅, 누군가 내 몸 곳곳을 망치로 두드리고 대못을 박는 것 같았다. 근육통이 너무 심해 쌍화탕을 처방받아 한 봉지 먹고 밤 9시부터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잠을 청했지만, 통증이 심해 잠을 잘 수 없었다. 욱신욱신한 통증을 잊으려고 책을 펼쳤다. 침대 머리맡에는 신앙심 깊고 내 신앙의 인도자가 되어준 후배 제이(별칭)가 병원으로 보내준 존 파이퍼 목사의 <병상의 은혜>가 있었다.

 “환우 여러분, 존 파이퍼 목사님이 말하는 것처럼 부디 여러분의 고난을 낭비하지 마세요.”

 유방암 3기를 앓은 구필 화가 조니 에럭슨 타다가 추천의 글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고난을 낭비하지 말라”라는 구절을 읽는 순간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내게 온 이 고통이 ‘위험한 기회’이고, 이 고난을 고난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나였다. 그런데 어느새 호중구 수치 하나에 나는 나약해져 있었고, 고난 그 자체에만 매달려 내 고난을 낭비하고 있었다. 조니 에럭슨 타다는 “병원은 감옥이 아니라 영혼을 단련하고 건강하게 하는 단련장”이라고 단언했다. 존 파이퍼 목사는 “지금의 아픔과 고통의 시간은 영원히 지속될 치유를 이루어내는 중”이라고 말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이곳을 어떻게 규정하고 어떤 태도로 다루느냐에 따라 이 시간도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가짐을 고쳐먹기로 했지만, 통증은 계속됐다. 자정께, 도저히 참지 못해 간호사실로 향했다.

 “타이레놀 한 알만 주세요. 근육통이 장난이 아니네요.”

 “열 먼저 재볼게요. 어? 37.8도네요. 타이레놀이 해열진통제이니 드시고 한 시간 있다 다시 열 잴게요.”

하루 만에 수치가 훌쩍 뛰다

 타이레놀을 먹고 시간이 지나니 통증이 좀 가셨다. 1시간 뒤 간호사가 와 열을 재니 37.6도다. 통증이 가시고 언뜻 잠들었던 모양이다. 새벽 3시께 잠을 깼는데 베개며 옷이며 침대보며 다 축축하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잠을 잤다. 화장실에 다녀와 간호사실에 가 다시 체온을 재보니 열이 뚝 떨어졌다.

 “36.9도네요. 열이 내리면서 땀을 많이 흘리셨을 거예요. 갈아입을 옷 드리고 침대보도 갈아드릴게요.”

 축축하고 땀 냄새 나는 옷을 벗고 바삭거리는 면옷을 입으니 한결 기분이 상쾌했다. 목이 말라 물 500㎖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열도 내렸으니 다시 잠을 청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병상의 은혜>를 마저 다 읽고 간절히 기도했다. 호중구 수치도 오르고 감당할 수 있는 고통만 내게 달라고, 이 고통을 낭비하지 않게 해달라고.

 “선생님, 호중구 수치 결과 나왔어요?”

 백혈구 촉진제 주사를 맞은 다음날, 간호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양선아님 호중구 수치는 6560 나왔네요.”

 “네? 6560이요?” 나는 놀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간호사를 바라보며 재차 물었다. “정말이요? 하루 만에 550대에서 이렇게 6500대로 뛸 수 있는 건가요?” “네, 그런 경우도 있더라고요. 환자마다 개인차가 커요.” “우와 이건 혁명적 수치인데요. 어제 그렇게 아프더니 이렇게 수치 올리려고 그랬나 봐요. 어젯밤 정말 온몸이 욱신욱신하고 식은땀을 너무 많이 흘려 침대보를 적실 정도였거든요. 고생한 보람은 있네요.”

 나는 6560이라는 수치를 듣고 헤벌레 웃었다. 이런 롤러코스터 인생이라니! 호중구 수치 하나에 울고 웃고, 지옥과 천당을 오간 며칠이었다.

 항암이 끝난 지금도 나는 정기적으로 혈액검사를 통해 백혈구 수치를 확인한다. 그만큼 면역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면역학의 권위자인 아보 도루 교수에 따르면, 성인의 경우 백혈구가 5000~6000개, 백혈구 중 림프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35~40%이면 면역력이 최적의 상태라고 한다. 백혈구가 4000개 이하고, 림프구의 비율이 30% 미만이면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지난 2월 검진에서 내 백혈구 수는 5400개였으나 림프구의 비율은 15.2%였다. 면역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시도하는 중이다. 사회정책팀 기자

▶ 2020년 연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8년 국가암등록통계를 보면, 암 치료를 받고 있거나 완치 판정을 받은 ‘암 유병자’가 2018년 기준 200만명을 넘어섰다. 국민 다수가 자신 또는 가족이 암 환자가 되는 경험을 한다. 2019년 말 암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인 <한겨레> 사회정책팀 양선아 기자(anmadang96@kakao.com)의 체험기를 격주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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