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전체 회의 시간이었다. 부장은 ㄱ씨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직원들이 모여 있는 단체 카톡방에서도 그의 잘못만을 지적하며 모욕을 줬다. 상사의 폭언과 모욕으로 우울감, 구토, 이명 등에 시달리던 ㄱ씨는 회사에 신고했지만, 적절한 조처를 받지 못했다. 결국 회사를 그만둔 그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의 문을 두드렸다.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2019년 7월부터 시행됐지만, 노동자 10명 중 9명은 괴롭힘을 당하고도 신고하지 않고 피해를 참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갑질119가 11일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 신고경험’ 관련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직장 내 괴롭힘’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32.5%·325명) 가운데, 회사나 노동청 등에 ‘신고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는 8.6%(28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91.4%는 직장 내 괴롭힘을 받고도 참고 있는 셈이다. 지난 3월17일부터 일주일동안 만 19살 이상 65살 이하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다.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이들은 대부분 피해를 인정받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71.4%(20명)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답했고, 17.9%(5명)만이 “인정받았다”고 답해 대부분이 피해를 인정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10.7%(3명)는 ‘현재 관련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답했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가운데 관련 사실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경험했다는 답변도 67.9%(19명)에 달했다. 구체적 내용으로는 ‘징계, 근무조건 악화’가 73.7%였고, ‘괴롭힘·따돌림(15.8%)’, ‘해고’(5.3%)가 뒤를 이었다.
괴롭힘 유형별로는 모욕·명예훼손(21.9%)이 가장 많았고, 이어 부당지시(16.2%), 따돌림·차별(14.3%), 폭행·폭언(13.5%) 등의 차례였다. 갑질금지법이 시행된 지 2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노동자 10명 중 3명꼴은 법의 존재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갑질금지법 시행에 대해 “모르고 있다”라고 답한 응답자는 31.9%(319명)였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43.4%), 비정규직(41.5%), 생산직(40.6)과 서비스직(38.0%), 월급 150만원 미만(44.3%) 노동자들 가운데 법 시행을 모른다는 응답이 평균(31.9%)보다 높았다.
직장갑질119는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는 갑질 피해 경험률이 36%로 평균(32.5%)보다 높지만 갑질금지법을 모르는 사람이 많고 예방교육도 받지 못해 직장갑질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며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을 의무화하고, 근로기준법 시행령을 개정해 갑질금지법을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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