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지위, 인정과 사랑…. 흔히 우리가 갖고 싶어 하고 바라는 것들이다. 나 역시 암 진단 전에는 집 장만하느라 진 막대한 빚을 하루라도 빨리 청산하고 싶어 돈을 모으기 위해 노력했다. 회사에서는 더 인정받으려고 애를 썼고, 개인적으로는 더 사랑받고 사랑하는 삶을 꿈꿨다.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고, 갖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렇다. 욕망, 욕구, 욕심 다 지나치게 많았다. 그러나 암 진단을 받고 항암을 시작하니 욕망, 욕구, 욕심 다이어트가 저절로 됐다. 내 꿈은 오로지 하나에 집중됐다. 바로 ‘완전관해’(암세포가 완전 소실된 것). 암이 완전히 관해된다면 덩실덩실 춤을 추며 많은 것을 욕심내지 않겠다고 신께 약속했다.
암 환자라면 알고 있는 ‘관해’라는 용어는 항암제에 반응이 있을 때 사용한다. 병원에서는 환자에게 항암제를 투입한 뒤 종양 크기 변화, 종양표지자 수치 등을 통해 암 치료 효과를 평가한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완전관해’(Complete Response, CR)를 ‘임상적으로 계측·평가 가능한 병변이 모두 사라지고, 새로운 병변(암세포)이 보이지 않는 상태가 4주 이상 지속된 상태’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완전관해 상태가 5년간 지속되면 암이 완치된 것으로 본다. 완전관해 말고도 ‘부분관해’라는 용어도 있는데, 종양의 축소율이 50% 이상이면서 동시에 평가 가능한 병변과 종양에 의한 2차적 악화가 없으면서 새로운 암이 생기지 않은 상태가 4주 이상 지속될 때 사용한다.
유방암 3기로 항암 전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에서 왼쪽 가슴에 2.6×2.7㎝의 암이 발견되고, 림프절 전이가 확인된 나는 선항암(AC 4차, 도세탁셀 4차)을 통해 암의 크기를 줄인 뒤 유방보존수술을 시도하기로 했다. 유방암 수술에는 유방 전 절제술과 유방보존수술이 있다. 유두와 유방 피부를 포함한 유방 조직 전체를 잘라내는 것이 전 절제술이고, 암을 포함한 주변 1~2㎝ 정도의 정상 조직만 잘라내는 것이 유방보존수술이다. 유방외과 의사는 암 크기가 2㎝ 이하로 줄어들면 유방보존수술을 시도해보겠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나는 유방암 책에 나와 있는 가슴 절제 수술 사진은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아마도 유방은 나의 그런 모습을 보고 코웃음을 쳤을지도 모른다. 암 진단 전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되레 ‘아스팔트에 껌딱지’라며 조롱만 했던 내가 막상 한쪽 유방을 전부 도려낼 수 있다고 하니 “그럴 수는 없다”며 도리질만 하니 그런 내 모습이 얼마나 낯설었겠는가. 유방 입장에서는 나의 난데없는 집착과 사랑이 뜬금없게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항암을 통해 암 크기가 2㎝ 이하가 아니라 아예 암덩어리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완전관해’가 되길 간절히 소망했다. 그래서 부분절제를 할 수 있다면 그동안 무관심했고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던 내 몸을 누구보다도 더 아껴주고 사랑하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나는 완전관해라는 ‘별’을 가슴에 품고, 항암이라는 ‘어둠’을 향해 기꺼이 걸어들어갔다.
박인혜 시인은 “별이 밤마다 반짝이는 것은 어둠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던가. 나는 완전관해라는 반짝이는 ‘별’을 따기 위해 각종 부작용이라는 ‘어둠’을 견뎠다. 항암 1차, 2차, 3차… 횟수가 거듭될수록 부작용도 하나씩 하나씩 늘어났다. 변비와 위쓰림, 입맛 변화는 기본이었고, 그 외 부작용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항암 2차 이후부터 나타난 부작용 중 하나는 혈관이 딱딱해지는 현상이었다.
“혈관이 딱딱한데요. 바늘이 튕겨 나올 것 같은데요? 바늘 꽂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왼팔로 할게요.”
“네? 정말요? 혈관이 왜 그렇게 딱딱해진 거죠?”
“아무래도 약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이쪽 팔은 될 수 있는 한 안 쓰셔야 해요.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치료제 투여방식 변경도 녹록잖아
항암의 여정 무엇 하나 쉽지 않지만
분노·절망 대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1차 항암을 왼쪽 팔에 맞고, 2차 항암을 오른쪽 팔에 맞았다. 내 딴에는 왼쪽 팔에 독한 항암제를 계속 맞으면 안 좋을 것 같아 팔을 바꿔가며 맞았다. 지나고 보니 어차피 수술 후에는 왼쪽 팔로는 채혈이나 혈압 재는 것 모두 금지가 되고 항암제가 투입되면 혈관이 딱딱해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으니 오른쪽 팔을 온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좋을 뻔했다. 아무튼 이날은 오른쪽 팔 혈관이 딱딱해져 왼쪽 팔에서 채혈을 하고 호중구 검사를 했다. 호중구 수치 걱정에 혈관 걱정까지. 걱정은 원플러스원이 됐다. 3차 항암 하는 날, 주치의에게 혈관 상황을 전하고 케모포트를 심어야 할지 상의를 했다.
케모포트는 굵은 중심 정맥에 관(카테터)을 삽입해 유지시키는 방법이다. 포트는 혈관을 통해 심장 가까이에 있는 굵은 혈관까지 삽입되는데, 동전 크기의 원통형 기구를 피부 밑에 이식해 여기에 혈관으로 통하는 주사관을 연결한다. 케모포트를 심으면 매번 팔 쪽 혈관을 찌르지 않아도 되고 항암제가 혈관에 샐 염려가 없는 장점이 있지만, 소독을 잘 해줘야 하고 흉터가 남는다는 단점이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빨간 줄을 긋고 의사와 일정 거리 떨어진 상태에서 진료를 보는데, 의사는 그날따라 지쳐 보였다. 항암 전 확인하는 호중구 수치는 나쁘지 않았다. 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혈관 걱정으로 의사에게 케모포트에 대해 물었더니, 의사는 이렇게 답했다.
“원하면 해도 상관없는데, 보통 케모포트는 전이성 환자들, 항암을 2~3년 이상 또는 평생 해야 하는 환자에게 해요. 환자는 전이성 환자도 아니고 항암 뒤 수술할 예정이잖아요. 원하면 해도 상관없는데, 케모포트 꽂았을 때 쇼크, 출혈, 패혈증 등 기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원하시면 상담 뒤에 하실 수 있어요. 항암 8차니 일단 혈관으로 진행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무엇 하나 간단한 것이 없었다. 인생 길을 걸어가다보면 예측할 수 없는 일을 만나듯, 항암의 여정 속에서 나는 예측하지 못했던 일을 수시로 만났다. 그때마다 절망하거나 분노하기보다 최대한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조절할 수 없는 것(혈관이 딱딱해지는 현상)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책이나 의사, 환우들에게 객관적인 정보 및 각종 경험담 수집)에 집중했다. 부작용 이야기를 들으니 굳이 무리해서 케모포트를 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섰다. 의사 의견대로 일단 팔 혈관으로 항암을 계속 진행해보기로 했다. 이후 나는 왼팔로 계속 8차까지 주사를 맞았는데, 다행히도 사랑스러운 나의 왼쪽 팔이 잘 버텨주었다. 능수능란한 간호사들이 혈관을 잘 찾아 주사를 꽂았고, 케모포트를 하지 않고도 잘 넘어갔다. 오른팔 일부 혈관은 여전히 딱딱하다.
혈관이 딱딱해지는 증상 외에도 손톱 변색이 시작됐다. 엄지손가락 가운데에 검은 줄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다른 손가락들과 발톱에도 변색이 왔다. 변색을 방지하고 손톱과 발톱을 보호하기 위해 15㎖에 5만6000원이나 하는 손톱영양제까지 사서 아침저녁으로 발라주었다. 손발톱 영양제가 변색이나 손톱 찢어짐 방지에 도움이 됐다는 환우들이 있었지만, 꾸준히 매일 영양제를 바르지 못한 나는 여전히 손톱이 약한 편이고 잘 찢어진다. 손발톱 변색은 항암을 마친 뒤 수개월이 지나니 자연스럽게 괜찮아졌다.
4차 항암 결과 암 크기 0.5㎝ 감소
암 완치라는 ‘희망의 별’을 품고
절반의 남은 여정 향해 뚜벅뚜벅
4차 항암 뒤에는 매달 규칙적으로 하던 생리가 중단됐다. 유방암을 치료하는 항암제 부작용 중 하나가 난소의 기능이 저하되고 난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 줄어드는 것이다. 따라서 생리가 불규칙해지거나 일시 중단되거나 조기 폐경, 불임이 될 수 있다. 항암 치료 뒤 임신하고자 하는 환자라면 미리 난소보호제를 맞고 대비를 해야 한다. 두 아이를 출산한 나는 난소보호제를 맞을 이유는 없었다. 그때 이후로 생리를 하지 않았고, 매번 검진할 때마다 생리를 하는지 안 하는지 의사는 묻는다. 안 하는 게 좋은 것이란다. 항암-수술-방사선 3대 표준치료 후 지금 나는 ‘타목시펜’이라는 유방암 약을 매일 먹고, 한달에 한번 ‘졸라덱스’(난소기능억제제)라는 ‘졸라’ 아픈 주사를 맞고 있다. 졸라덱스는 배에 맞는데 바늘 굵기가 1.65㎜ 정도다. 독감 예방 접종 때 사용하는 주삿바늘 굵기가 0.5㎜ 정도이고, 채혈할 때는 이보다 더 가는 주삿바늘을 쓴다는 것을 고려하면, 졸라덱스 주삿바늘이 얼마나 굵은지 알 수 있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배를 풍선처럼 부풀렸다가 숨을 내뱉으면서 주사를 맞으면 덜 아프다.
약과 주사 역시 여성호르몬을 차단하는 작용을 하므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 빠르게 폐경 증상을 경험하고 있다.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고, 땀이 비 오듯 흐르는 증상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런 증상이 나타나면 나는 “그분이 오셨다. 오셨어”라고 농담하며 웃어 넘기곤 한다. 하지만 환우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있는데 땀이 비 오듯 흐르면 난감하다. 여성호르몬 감소로 질 건조증도 생겨 불편함을 느껴 산부인과 진료도 받았다. 이외에도 불면증과 감정의 롤러코스터 증상을 겪는 환자도 많은데, 나는 규칙적인 운동과 복식호흡, 햇볕 쐬기, 심리학 공부 등을 통해 이 증상들을 극복해가는 중이다.
8차 항암 중 4차를 마무리하고 병원에서는 중간 검사를 진행했다. 유방외과 의사는 촉진을 통해 “암이 0.5㎝ 정도 줄어들었다”며 “계획대로 항암한 뒤에 보자”고 말했다. 초음파 검사와 시티 검사를 했는데, 5차 항암을 하는 날 종양내과 의사에게 중간 검사 결과를 들었다.
“초음파로 볼 때는 암이 말랑말랑해 보이고 겨드랑이 림프절 부위는 작아졌다고 보고하고 있어요. 시티 검사는 정확한 검사는 아닌데 크기 자체보다는 형상이 바뀌었네요. (컴퓨터 화면에서 이전 시티 결과와 이번 검사 결과를 대조해 보여주며) 초기에는 이게 꽉 차 있었지요? 그런데 이렇게 안이 녹았어요. 안이 죽은 거지…. 겨드랑이 림프절 암은 예전보다 작아졌어요. 이랬던 암이 이렇게 줄어든 거죠.(림프절 안에 3개의 점이 보였고, 그중 2개는 줄어들어 거의 안 보였고, 1개는 여전히 조금 보였다) 자, 그래서 원래 계획대로 항암을 계속 진행하면 될 것 같아요. 백혈구 수치도 괜찮네요.”
의무기록지를 떼서 확인해보니 왼쪽 유방에 있던 2.6×2.7㎝ 암이 2.1×2.5㎝로 줄었다. 림프절 쪽 암은 4.9㎜의 암이 2.9㎜로 줄었다고 기록돼 있었다. ‘완전관해’라는 별을 가슴속에 품었던 나는 드라마틱하게 암이 줄어들지 않아 약간 실망했다. 그렇지만 0.5㎝라도 줄어들었다는 사실에 마냥 기뻤다. 유방암 카페에서 항암제 투입 뒤에도 전혀 암의 크기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암이 더 커져 고민을 하는 경우도 봤기 때문이다. 크기 변화는 적지만 “암덩이 안이 녹았다”는 종양내과 의사의 말은 내게 희망의 ‘별’이었다. 별이 반짝반짝 빛날 수만 있다면 각종 부작용도 그러려니 하게 됐다. 그렇게 나는 항암산 여정 중 절반을 마무리했고, 항암제를 바꿔 남은 절반의 여정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완전관해’라는 별을 가슴에 품고.
사회정책팀 기자
▶ 2020년 연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8년 국가암등록통계를 보면, 암 치료를 받고 있거나 완치 판정을 받은 ‘암 유병자’가 2018년 기준 200만명을 넘어섰다. 국민 다수가 자신 또는 가족이 암 환자가 되는 경험을 한다. 2019년 말 암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인 <한겨레> 사회정책팀 양선아 기자
(anmadang96@kakao.com)의 체험기를 격주로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