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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왜 차별이냐” 물을 때 “이래서 차별”이라 답할 수 있는 세상

등록 2021-06-15 14:24수정 2021-06-16 02:13

[성소수자 인권의 달×차별금지법 제정 10만 청원]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달라졌을 세 가지 사건
① 고 변희수 전 하사 강제전역
②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피해
③ 스쿨미투 이후의 학교
학내 성폭력 문제 등을 고발한하는 등 ‘스쿨미투’ 운동을 벌여온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이 4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2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사전심의에 참석한다고 밝혔다. 김정효 기자
학내 성폭력 문제 등을 고발한하는 등 ‘스쿨미투’ 운동을 벌여온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이 4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2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사전심의에 참석한다고 밝혔다. 김정효 기자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동의한 사람이 15일 국회 소관위원회 회부 기준인 10만명을 넘어섰다. 지난 달 24일 청원이 시작된 지 22일 만이다. 이에 따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차별금지법안 심사에 속도가 붙게 됐다.

국회에 차별금지법안이 처음 올라온 것은 2007년이다. 이후 14년을 표류했다. 그사이 대한민국 군인으로 남길 간절히 바랐던 트랜스젠더 군인은 강제전역 뒤 죽음을 택했다. 고용시장에선 많은 이들이 여전히 성별·학력·나이·사회적 신분·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을 겪는다. 곳곳에서 ‘스쿨 미투’를 외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지만 성차별이 만연한 교내 환경은 변함 없다.

헌법 제11조 1항은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차별을 금지해야 하는 근거는 헌법에 있지만 무엇이 차별이고, 차별의 예방과 구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해져 있지 않다. 피해자는 자신이 당한 차별을 설명할 법적, 제도적 언어가 없다. 차별 입증 단계부터 높은 벽에 부딪힌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이 벽을 부수는 망치다. 전문가들은 “차별금지법은 존재 자체로 ‘차별을 하면 안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사회에 준다. 피해자들에겐 차별을 설명하고 문제제기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가 생긴다”며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국민적 공감대는 이미 형성돼 있다. 지난해 6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10명 중 9명(88.5%)은 한국 사회 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차별 금지를 법률에 제정하는 방안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나도 차별의 대상이나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는 응답이 91.1%에 달했다.

6월 성소수자 인권의 달, 그리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계기로 <한겨레>는 ‘차별금지법이 있는 한국 사회’를 상상해 봤다. 대표 차별 사례 세 가지를 꼽아 지난해 6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면 이 사건들이 어떻게 전개됐을지 전문가 자문을 받아 살펴봤다. 장 의원이 낸 차별금지법안은 지난해 9월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됐다. 역대 네 번째 법사위 상정이다.

스쿨미투 이후의 학교

ㄴ씨는 스쿨미투가 남의 일일 것만 같았다. 대전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ㄴ(17)씨는 졸업사진을 찍는 날 교사로부터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ㄴ씨가 맨얼굴로 사진을 찍으러 갔더니 한 교사가 “너는 화장 안 했네? 자신 있나봐”라고 말한 것이다. ‘여자라면 당연히 꾸며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아무렇지 않게 학생에게 전파한 것이다. 성차별적 경험은 수업시간에도 일어난다. 체육시간은 남학생에게는 자유시간이나 다름없다. 체육실습은 여학생 위주로만 진행된다. 체육교사는 ‘남자는 체육을 잘하고, 여자는 체육을 못한다’고 말했다. 남학생, 여학생 모두에게 차별 발언이다. ㄴ씨는 “학생총회의를 통해 문제제기를 해봤지만 선생님들은 ‘이게 왜 차별이냐’고 말한다. 차별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보니 문제제기하는 일에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육 현장에서 성차별을 경험하는 건 ㄴ씨만의 일이 아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9년 전국 190개 초·중·고등학교 학생 4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초중등 성평등 교육의 요구 현실과 활성화 방안’ 보고서)를 보면, 지난 1년 간 학교에서 성차별적 발언이나 행동을 당하거나 목격한 적 있다고 답한 비율이 여학생의 경우 19.3%(남학생 9%)에 달했다. 성차별적 경험을 하거나 목격했을 때 3명 중 2명(64.7%)은 ‘그냥 넘어갔다’고 답했다. 여학교에서 성희롱과 성차별을 경험한 학생 10명 중 8명(75.7%)은 가해자가 교사였다고 밝혔다.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스쿨미투 가해 교사들이 ‘농담 삼아’ ‘분위기 환기를 위해’ 한 발언은 변명의 여지 없는 차별이 된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에는 ‘성적 언동이나 성적 요구로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거나 피해를 유발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행위’를 차별로 명시하고 있다. 조혜인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성희롱은 성별을 이유로 한 괴롭힘, 여학생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다. 스쿨미투는 개별 교사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지만 차별적 환경이 조성돼 있는 교육 현장 전체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다. 차별금지법이 도입되면 학교에도 차별 받지 않고 교육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책무가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안은 교육기관에서의 차별금지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ㄴ씨가 겪은 차별적 경험은 차별금지법안 제32조(교육내용의 차별금지)에 모두 담겨 있다. △교육목표·교육내용·생활지도 기준이 성별 등에 대한 차별을 포함하는 행위 △성별 등에 따라 교육내용 및 교과과정 편성을 달리하는 행위 △성별 등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혐오나 편견을 교육내용으로 편성하거나 이를 교육하는 행위 △그밖에 교육내용 등에 있어 성별 등을 이유로 불리하게 대우하거나 현존하는 차별을 유지·심화하는 행위 등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이런 장면을 상상해 봅니다

ㄴ씨는 최근 학생총회의에서 성차별적 체육수업과 관련해 문제제기를 했다. 체육교사는 “여성이 체육을 못하는 건 당연한 것이니 여학생에게만 체육실습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게 왜 차별이냐”고 말했다. ㄴ씨와 친구들은 체육교사가 절대 반박할 수 없는 근거를 들이댔다. “차별금지법에 따라 교육내용 및 교과과정 편성을 달리하는 행위는 차별이다”

차별금지법이 도입되고 나서부터 학교에서는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 일상이 됐다. 더는 학생 개인이 큰 용기를 내야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교사들도 수업시간에 농담처럼 툭툭 내뱉던 성희롱이나 차별적 발언을 조심하는 눈치다. 학교는 차별금지법에 따라 차별 없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성평등위원회를 운영하는 등 제도 운영에 힘쓰고 있다. 최근에는 학생과 교사들이 참여한 성평등위원회에서 여학생에게만 적용되던 ‘속옷은 무늬 없는 흰색만 입어야 한다’는 복장 규정, ‘바리캉을 사용한 짧은 스포츠형 헤어스타일을 금지한다’는 두발 규정이 사라졌다. ㄴ씨는 “차별금지법이 생기면서 비로소 차별을 차별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여전히 학교에서 바꿔나갈 차별적 사안이 많다. 누구나 차별 받지 않는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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