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변희수 전 하사가 지난해 3월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군인권센터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며 밝게 웃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기갑의 돌파력으로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던 변희수 전 하사의 값진 승리는 너무 뒤늦게 찾아왔다. 군인 신분을 잃은 지 624일,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지 218일 만인 7일,
변 전 하사는 군을 상대로 낸 전역 취소 소송에서 승소했다. 대전지법 행정2부(재판장 오영표)는 성확정(성전환) 수술까지 마친 여성인 변 전 하사를 ‘남성’으로 보고 전역을 결정한 군의 처분이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위법”하다고 했다.
1년 2개월에 걸친 재판 과정은 지난하고 고통스러웠다. 지난해 8월 변 전 하사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논의하고 관련 청원에 참여하는 대한민국 시민사회를 믿는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첫 재판이 열릴 때까지 8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변 전 하사는 수개월의 지지부진한 과정을 견디다 첫 변론기일을 한 달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유족과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변 전 하사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소송을 이어가기로 했다. “국가와 시민을 위해 헌신했고, 헌신하고자 했던 군인 변희수의 영전에 국방부와 육군의 통렬한 사죄를 반드시 받아내기” 위해서였다.
김보라미 변호사(법률사무소 디케)는 8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변 전 하사가 “착하고, 친절하고, 순수한” 사람이었다고, 무엇보다 군에 대한 애정이 깊은 사람이었다고 기억했다. 김 변호사는 지난해 군 인사소청부터 전역처분 취소 소송까지 1년 넘게 변 전 하사와 유족을 대리해왔다. 변론 과정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적 인식을 숨김 없이 드러내는 군의 시선에 좌절했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변 전 하사의 승리를 확신했다고 한다. 하지만 “명백하고 당연했던” 결론이 너무나 늦게 난 점에 대해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김 변호사는 “변 전 하사가 살아있을 때 이런 결과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7일 오전 대전시 서구 둔산동 대전지방법원 앞에서 법원 판결을 환영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어제 같은 결과를 예상했나.
=저는 예상했다. 육군이 전역처분을 하는 과정에서 너무 말이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 가령 전역 심사를 하기 전에 의무위원회에서 변 전 하사가 복무가 가능한 몸 상태인지를 먼저 판정한다. 그런데 당시 전문가 소견은 ‘성전환(성확정) 수술에 따른 외부 상처는 치유될 것으로 보인다’였다. 또 전역심사위원회에서 ‘호르몬 주사 외에 복용하는 약이 있냐’고 물었을 때, 변 전 하사는 ‘없다’라고 답한다. 그때 변 전 하사의 컨디션이 굉장히 좋을 때였다. 그런데 운영부서 의견에는 ‘정신과 약물 장기복용 시 정상적인 임무 수행 제한이 예상된다’‘약물 복용 기간에는 전차 가동이 불가하다’는 식의 내용이 나온다. 변희수 하사가 성확정 수술 뒤 받은 호르몬 요법은 정신과 약물이 아니라, 갱년기에 접어든 사람들도 흔히 받는 요법이다. 심신장애로 전역처분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인데도, 그와 무관하게 심신장애로 결론 내린 것이었다. 이런 자료들을 법정에서 확인했을 때 ‘이건 이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 참고한 자료가 있나.
=인권위 조사 자료에 따르면, 변 전 하사처럼 심신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당사자가 계속 복무하기를 원하면, 대부분 복무를 시키지 전역처분을 내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 동안, 변 전 하사처럼 심신장애 3급 판정을 받은 부사관과 장교 194명 중 자신이 원하지 않는데도 전역을 한 사람은 없었다.)
-이번 재판의 주된 쟁점은 무엇이었나.
=마지막까지 소송수계(청구인의 사망 등으로 소송중단을 막기 위한 절차)가 되냐 안 되냐를 두고 다퉜다. ‘급여 청구권은 법률상 이익이 있다’라는 대법원 판례가 이미 존재하는 점을 고려하면 군에서 무리한 주장을 한 것인데, 이를 재판부가 잘 정리를 해준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변 하사가 심신장애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었는데, 법원에서 변 하사는 애초에 ‘여성’이었기 때문에 ‘남성’을 전제로 한 심신장애 판정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적시했다. 군에서는 부인했지만, 트랜스젠더로서 성확정 수술을 받고 성별 정정 허가까지 받은 변 전 하사가 당연히 여성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는 게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판결문 중에 의미 있다고 본 부분이 또 있다면 무엇인가.
=판결문에 ‘성소수자에게는 이런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위법성 확인이 필요하다고 하는 대목이 있다. 저는 이게 일부러 넣은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결말 부분에 가면 성소수자 인권 등을 고려해 정부가 정책을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는 언급도 있다. 어떻게 보면 굳이 쓸 필요가 없는 부분인데, 정부와 국회에서 이런 유사한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법원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굉장히 인상적으로 읽은 판결문이다.
7일 저녁 ‘변희수 하사 추모행동’이 열린 곳 주변에 설치된 추모 게시판에 시민들이 적은 메모지가 빼곡하게 붙어있다. 박고은 기
김 변호사는 재판 과정에서 군이 성소수자에 대한 노골적인 편견을 드러내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군은 변 전 하사의 성확정 수술 사실이 부대원들에게 알려지면 호기심의 대상이 돼 군에서의 활용성과 필요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해외 사례를 들면서 성확정 수술을 한 트랜스젠더의 사망률과 자살률이 일반인에 비해 높으므로 심신장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이러한 군의 소송 절차 자체가 거대한 2차 가해”였다고 돌아봤다.
-육군이 법정에서 전역처분의 정당성을 설파하기 위해 문제적인 주장들을 하기도 했다.
=너무 많았다. 시중에 있는 혐오표현을 정중한 말로 바꾸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트랜스젠더라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크니 군에 복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성확정 수술을 한 이상 부대에 융합되기 어렵고, 군에서의 활용성이나 필요성이 제한된다는 황당하고 차별적인 발언도 있었다. 그래서 준비서면으로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드러내는 혐오표현을 멈춰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소송 절차 자체가 2차 가해였고, 성소수자에 대한 어떤 무지, 미신을 군이 주장하는 상황이었다. 과학적인 근거를 갖고 논쟁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재판부가 트랜스젠더 군 복무 문제에 대한 ‘입법·정책적’ 과제를 이야기했다.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나?
=군 자체가 이번 전역처분에서 드러났듯 성별 정체성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상황이다. 조직 상부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발언들이 왜 문제인지도 모른다는 것이 드러났다. 사실 최근에 여군들에게 일어난 일들도 같은 차원인 것 같다. 그 사람의 능력을 보지 않고, ‘그 사람은 트랜스젠더야’ 혹은 ‘그 사람은 여자야’ 등 성별에 근거해 차별하는 것이다. 다시는 이런 일들 발생하지 않게 군에 대한 전면적인 인권영향평가가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군이 항소할 가능성도 있다.
=항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번 판결에 대한 기사를 보면 악플이 많이 달린다. 사회적 소수자는 국가가 나서서 보호해야 한다. 너무 명백하게 결론이 난 일에 대해 항소까지 한다는 것은, 악플과 같은 2차 가해에 불을 붙이는 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군대 인권문제로 군내 포용적 문화와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군이 항소를 고려하고 있다는 게 저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대리하면서 지켜본 변 하사는 어떤 사람이었나?
=너무 착했고, 친절했고, 순수했다. 군 인사소청(군인이 부당한 전역 등 자신 의사에 반한 불리한 처분에 대하여 불복하는 절차)을 위해 3∼4시간을 대기했던 날이 있었는데, 본인이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됐는지, 군인으로서 어떤 자부심을 느끼는지 한참을 내게 설명해줬다. 당시 변 하사는 군 인사소청에서 이길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군대를 너무 좋아했다.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는 특이한 일이다.(웃음) 군 인사소청이 끝나고 계룡대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참모총장이 들어오더라. 그런데 변 하사가 참모총장을 보고 너무 신이 나 했다.
변 하사의 군대에 대한 애정을 알기 때문에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있을 때 이런 결과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뒤늦은 가정이지만 변희수 하사가 살아있었다면, 결과적으로 전차 조종수로 복직할 수 있었을까?
=저는 복직하게 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선택 문제이기도 하지만 워낙 군대를 사랑했던 친구였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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