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현지시각)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미성년자 성착취범 ‘엘’(가명·가운데)이 체포돼 구금 중이다. 서울경찰청 제공
‘엔(n)번방’ 사건과
‘제2 엔번방’ 사건처럼 성착취물을 촬영해 유포하고 이를 판매·시청·소지하는 디지털 성범죄가 계속 늘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온라인 수색’ 제도 도입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원상 조선대 교수(법학)는 2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디지털 성범죄 수사강화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독일 사례를 발표하며 온라인 수색 도입 필요성과 도입 때 고려해야 할 사항 등을 설명했다. 온라인 수색이란 국가가 범죄 수사를 목적으로 피혐의자의 컴퓨터와 서버, 기타 정보처리 장치 및 클라우드, 웹하드와 같은 온라인 저장 공간에 비밀리에 접근해 정보를 열람하고 범죄 증거를 수집하는 수사기법을 가리킨다.
독일은 2018년 이 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독일 연방 형사소송법은 내란죄와 테러단체 조직죄,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 유포·취득·소지죄, 강제노역죄, 화폐 및 유가증권 위조죄 등을 온라인 수색이 가능한 중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이원상 교수는 “독일은 상당히 광범위하게 온라인 수색을 인정한다”며 “우리나라에서는 시민들의 충분한 합의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로 (온라인 수색을) 한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온라인 수색은 현행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경찰의 위장수사가 가진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거론됐다. 이 교수는 “범죄자와 연락이 불가능해 범죄 기회를 제공할 수 없거나 범죄자가 범죄를 실행에 옮기지 않는 경우에는 경찰이 위장수사를 할 수 없다”며 “온라인 수색은 범죄자 의사와 상관없이 범죄자가 관리하고 있는 정보에 접근해 수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온라인 수색이 기본권 침해 우려도 있는 만큼 적절한 감시·통제방안이 충분히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법원 허가뿐만 아니라 수사기관 내부 통제(수사방법 명문화), 국가경찰위원회와 국회에 수사 관련 자료 보고 의무화, 피수색자에 대한 사후 통지 및 온라인 수색으로 수집한 정보 추출 과정의 참여권 보장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온라인 수색은 보충적 수사기법이지 만능열쇠는 아니다. 저장되지 않고 실시간 전송되는 정보를 획득할 수 없고, 범죄자 컴퓨터 등에 온라인 수색을 위한 프로그램을 강제로 설치하기 어려운 점, 암호화된 정보를 열람하기 어려운 점 등 한계도 분명히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지금도 디지털 성범죄자들이 수사망을 비웃으며 호의호식하며 살고 있는 데 반해 피해자들은 지옥 속에서 하루하루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온라인 수색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경찰청은 온라인 수색 활동의 적법성 검토 및 도입 방안을 주제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토론회에서는 수사·사법기관이 수집한 피해촬영물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노선이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피해자들에게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곳에 피해촬영물이 계속 보관돼 어떻게 관리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 있는 것도 추가 유포 피해에 대한 불안감을 높이는 요인”이라며 “증거물로 확보된 피해촬영물 관리를 위한 명확한 지침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은 유엔에서 정한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로, 토론회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과 기본소득당 여성주의 의제기구인 ‘베이직 페미’가 마련했다. 용혜인 의원은 “디지털 성범죄 규모가 나날이 커지고 그 수법이 교묘해지는 지금,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수사강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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