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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블랙이글스 정비사 꿈꿨던 하사 성추행한 준위…항소심도 유죄

등록 2023-02-16 18:33수정 2023-02-16 19:13

2020년 보직 변경 뒤 “군 생활 힘들다” 토로
2021년 5월 사망…2개월 전 성추행 피해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지난해 10월13일 강원 강릉시 상공에서 에어쇼 사전 연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지난해 10월13일 강원 강릉시 상공에서 에어쇼 사전 연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ㄱ씨는 고교시절부터 전투기를 정비하는 공군정비사를 꿈꿨다.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의 곡예비행(에어쇼)을 보면서는 그 꿈을 더욱 구체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블랙이글스 정비사가 되고 싶어, 2017년 공군 부사관후보생 모집에 지원해 합격했다. 체력이 부족하다고 느껴 밤마다 홀로 학교 운동장을 뛰며 노력한 결과였다. 군사훈련 기간, 그는 동기들 가운데 가장 높은 종합 점수를 받았다. 공군본부 직할부대인 제53특수비행전대(블랙이글스·이하 53전대) 배속이 예정됐다. 학창시절부터 꾼 꿈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53전대에서 여성 군인을 받지 않겠다며 ㄱ씨 배속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부대 특성상 연간 70∼80일 정도 출장이 있고, 대부분 예비군 숙소를 출장지 숙소로 사용하는데, 여성 군인 숙소를 지원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결국 ㄱ씨는 군대 내 성차별로 꿈을 이루지 못하고 2017년 11월 제8전투비행단(이하 8비)에 배치됐다. 8비에서 항공기 정비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정비 업무를 하던 그는 2020년 4월 항공기 자재(부품) 관리로 보직이 변경됐다. 보급·수송·정비 등 다른 부서와 협조할 일이 많았다. 가뜩이나 신경 쓸 게 많은 업무인데, 그해 7월께 새 군수체계 시범 운용으로 업무 부담은 더욱 가중됐다. 그가 가족과 동료들에게 ‘군 생활이 힘들다’고 말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다. 평소 서핑과 스키 등 야외 활동을 좋아하던 그였지만, 그해 1∼2월을 기점으로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하자 부대에서 외출·휴가를 통제해 ㄱ씨가 더욱 힘들어했다는 것이 그의 동료들 증언이다. 군 입대 당시만 해도 장기 복무를 결심했던 ㄱ씨는 2020년 11월 가족들에게 ‘전역하고 싶다’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21년 5월11일 오전, 그는 영외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주거지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고인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고인과 같은 부대 소속이었던 50대 남성 이아무개 준위였다. 이씨는 이날 ㄱ씨가 출근하지 않자, ㄱ씨 숙소 앞에 가서 전화를 걸었다. 벨소리는 울렸지만 그 외 인기척이 없었다. 이씨는 자신의 연락을 받고 온 박모 상사와 함께 ㄱ씨 숙소 방범창을 뜯고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이씨는 방범창과 연결된 옷방에서 숨진 ㄱ씨를 발견한 다음, 거실 안으로 들어가 책상 위에 있던 에이포(A4)용지와 공책을 집어 들기도 했다. 이 일로 이씨는 박씨와 공동으로 방범창을 뜯고 고인의 주거를 침입·수색한 혐의로 군 수사기관 수사를 받고 2021년 7월 불구속 기소됐다.

ㄱ씨와 같은 부대에서 일한 동료들은 군 수사기관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으면서 평소에 이씨가 ㄱ씨를 잘 챙겼고, ㄱ씨 역시 ‘감독관’(준위 계급을 보통 부르는 말)을 의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런데 수사 과정에서 이씨의 성추행 혐의가 새로 포착됐다. ㄱ씨가 숨지기 전인 2021년 3∼4월, 이씨가 ㄱ씨의 볼을 한 손으로 잡는 방식으로 2차례 성추행을 했다는 혐의가 공소사실에 담긴 것이다. 이씨는 2021년 10월 군인 등 강제추행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1심 재판이 진행된 공군보통군사법원에서 이씨는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방범창을 뜯고 피해자 숙소 안으로 들어간 사실은 인정하지만, 불러도 아무런 응답이 없는 피해자를 긴급하게 구조할 목적으로 한 행동이기 때문에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또 피해자 숙소에 들어가서 무의식적으로 에이포 용지와 공책을 만진 것일 뿐, 어떤 물건을 찾기 위해 수색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강제추행 혐의를 두고서도 “부적절한 신체 접촉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군 검찰은 “피해자의 상관인 피고인은 피해자가 의지할 수밖에 없는 지위를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고, 장기지원을 고민하는 피해자를 상담하며 피해자와 쌓은 신뢰관계를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다”며 “추행의 정도가 다소 경미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중형이 불가피하다”며 재판부에 징역 4년을 구형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월 이씨의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이씨가 피해자 숙소에서 거실 안쪽에 있는 에이포 용지와 노트를 만지기 위해서는 피해자 침대 위를 밟고 지나가야 하고, 피해자가 발견된 방과 거실 사이에는 선풍기와 세탁물 건조대, 서랍장 등이 있어 무의식적으로 거실 안쪽까지 걸어갔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1심 재판부는 또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피해자의) 볼을 잡는 행위는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에게 성적 불쾌감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도덕적 관념에 반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다만 초범인 점 등을 고려해 이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후 이씨와 군 검찰이 쌍방으로 항소한 이 사건은 지난해 7월 서울고법으로 이관됐다. 군사재판 항소심을 서울고법에서 재판하도록 하는 군사법원법이 시행되면서다. 항소심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이씨는 전역했다.

지난 9일 서울고법 형사10부(재판장 이재희)도 이씨의 강제추행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50대 중반의 남성 상관이 20대 중반인 여성 부하의 얼굴 부위 중 민감할 수 있는 볼 부분을 꼬집거나 잡는 등의 행위는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불쾌감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는 행위”라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다만, 나머지 혐의는 모두 무죄라고 봤다. 이씨가 피해자 숙소 안에 머무른 시간은 5초 내지 10초로 매우 짧았던 것으로 보이고, 이씨가 어떤 물건을 발견하려는 수색을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항소심 재판부의 설명이다. 또 이씨 입장에서는 피해자가 건강상의 문제로 의식 불명 상태에 빠졌을지도 모른다고 오인할 만한 상황이었고, 피해자 구조 외 다른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공동주거침입·재물손괴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이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 성폭력 치료강의 40시간 수강과 3년 간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및 장애인 관련기관 취업 제한을 명령했다.

하지만 이씨는 강제추행 혐의에 대해 마지막까지 다투겠다며 지난 14일 대법원에 상고했다. 검찰도 양형 부당 등의 이유로 같은 날 상고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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