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효경/칼럼니스트
2050 여성살이 /
신정아 관련 사태를 바라보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씁쓸함을 느낀다. 이제 이 사건은 한 ‘대단한’ 여성이 벌인 사기극을 넘어서, 황색 언론의 보도가 버무려진 관료 사회의 부패로까지 확대되어버렸기 때문에 ‘학력 위조’라는 문제의 시발점과는 멀어져버린 것 같다. 그러나 잘나가던 여성 큐레이터의 인생을 한방에 추락시키고 각종 사회 유명 인사들의 창피한 고해성사가 줄을 이었던 이 초유의 학력 위조 사태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학력을 위조한 사람들 가운데는 상당수가 여성들이었다. 나는 결코 학력을 속인 그들의 행동을 변호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물 섞인 고백을 지켜보며 꽤나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한국 남자들에게도 학벌의 벽은 높고도 힘든 것이겠지만, 대한민국에서 배운 것이 없는 여자들은 결코 성공할 수 없는 것일까. 확실히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지적인 존재와는 거리가 멀다. 김혜순 시인이 문단에 등단했을 때, 원로 남성 문인들 중 한 사람이 “아니, 식모 이름을 가진 사람이 글은 어떻게 쓰나?”라고 말했다 한다.
집에서 애나 키워야 할 여성들이 남성들의 영역에 진출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던 것이다.
한국 사회는 ‘못 배운’ 여성들에게 결코 성공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지만, ‘배울 만큼 배운’ 여성들에게도 여전히 냉담하기는 마찬가지다. 여자 대학생 및 대학원생의 비율이 나날이 높아져가는 국립대에서도 여자 교수의 비율은 채 10%가 되지 않는다. 여자들은 ‘너무 감정적’이라 학문적 동료로 삼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서글프게도 공부만큼 잘하는 것이 없어(?) 계속 공부를 하고 있는 나는 주인집 아주머니에게조차 ‘여자가 계속 그렇게 공부만 해서 뭐 할래? 시집이나 가라’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해마다 국가고시의 여성 합격률이 늘어간다는 소식은 얼핏 들으면 굉장히 고무적이지만, 그 이면에는 대기업에 취업했던 선배 언니들이 도저히 그곳에서 미래를 보지 못하고 사시를 시작한다는 웃지 못할 뒷사정이 있다.
한때 우리 사회를 풍미한, 아름다운데다 지적이기까지 한 여성 아나운서 신드롬을 바라보며 나는 코웃음을 쳤다. 사실 당신들이 바라는 것은 똑똑한 여자가 아니라 적당한 ‘학벌을 가진’ 예쁜 여자가 아니냐고.
신정아 사태를 바라보며 우리가 진정 깨달아야 할 것은 학벌이 그 사람의 노력을 보여주는 만큼의 가치로만 인정받고 실력으로 평가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효경/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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