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어진/칼럼니스트
2050 여성살이/
그녀를 모르면 간첩. 서울 삼청동, 안국동, 계동 일대에선 그렇다. 방년 55세 마나님 허식씨. 3년 전 계동에 장아찌 가게를 연 게 시작이었다. 짠 밑반찬을 위험시하는 요즘 입맛에 장아찌는 기피대상이다. 헌데 그녀의 장아찌 가게는 대성공. 왜일까? 전국에 있는 ‘파트너’들이 보내주는 유기농 재료를 쓴다. 강화도 순무, 울릉도 명이 나물, 하동의 매실과 어린 녹차잎에다 감까지. 그녀에겐 보이는 모든 식재료가 장아찌감이다. 원천기술은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절묘한 간 맞추기. 쑥이나 취나물이 향을 잃지 않은 채 장아찌로 거듭 난다는 게 놀랍다. 또 첨가제를 전혀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 입소문을 탔다.
사주를 ‘밥순이’로 타고 났다고 뽐내는 그녀. 따뜻한 밥 지어 혼자 먹는 게 미안해 가게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나 둘 불러 장아찌 반찬에 먹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권유로 장아찌 식당을 연 게 석 달 전이다. 파프리카에 얹힌 찰밥과 장국에 말아먹는 국수가 대표 메뉴. 안동 한우 양지머리 육수는 자극적 첨가물에 익숙한 혀에 심심하다 못해 밍밍할 정도. 사무실 후배가 이끄는 대로 장아찌 식당에 간 나는 그 순결한 국물에 반해 그녀의 숭배자가 되었다.
장아찌가 독성 제거에 탁월한 약효를 발휘한다는 것도 그녀로부터 배웠다. 상한 음식을 먹고 생긴 두드러기나 발진에 그녀는 매실 원액 작은 컵을 내민다. 웬만한 식중독은 다양한 장아찌 응급 처치로 다스린다. 최소 몇 달, 보통은 반년이나 일년 이상 숙성하는 슬로우 푸드 장아찌를 담으며 그녀 또한 장아찌처럼 숙성했을까? 성격 까칠한 손님의 불평이나 무례에도 눈 하나 까닥하지 않고 곰살 맞은 대접을 한다. 최근 일본 잡지에 서울 자연음식 명인으로 소개된 뒤론 관광객으로 위장한 일본 산업 스파이들까지 출입한단다.
얼마전 눈 많이 내린 날, 그녀가 보낸 문자메시지. “달래양념장에 콩나물밥 먹으러 와요.” 나와 친구는 득달같이 달려갔다. 골목에 눈은 하염없이 쌓이고, 우린 달래 송송 썰어 넣은 참기름 양념장에 콩나물밥을 비벼 입이 미어터지게 먹어댔다. “눈이 내리네”를 컴퓨터에 다운받아 틀어놓고 마나님은 즉석 안무에 몸을 던지는 엔터테인먼트까지 제공했다. 그 날 밥값이 무료였음은 물론이다. 돈 받고 음식 파는 일이 아직 어색하다는 음식점 주인. 흥이 나면 단호박 파이를 굽고 발사믹 쏘스 비프 샐러드를 차려 친구 겸 고객들을 불러낸다. 동네 사교계의 허브가 된 장아찌 식당. 오, 북촌엔 태어난 지 오래된 언니의 향기로 가득하다.
박어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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