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여성

노년의 고수가 아름답다

등록 2008-11-05 21:43

박어진/칼럼니스트
박어진/칼럼니스트
2050 여성살이
앗, 50m 전방에 미인 등장이다. 서울 삼청동 골목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내게 충격적인 미모로 다가온 60대 왕언니. ‘소금·후추’ 뒤섞인 투 톤의 머리칼을 질끈 묶고 짧은 라운드 칼라, 베이지 재킷 아래 긴 보라색 티셔츠와 머플러, 거기에다 아랍풍 에스닉한 분위기 물씬한 바지로 골목의 풍경을 압도하고 있으니 말이다. 핵심은 걸음걸이였다. 누구를 딱히 의식하지 않고 무심히 내딛는 그녀의 발걸음 하나하나에 마치 연꽃이 한 송이씩 피어나는 듯한 우아함이 배어 있었다. 이 정도의 품격이라면 최소 3대에 걸친 귀족 집안 출신이 아닐까? 심한 감동을 받은 나머지 그만 몸이 떨릴 지경.

젊을 때는 누구나 어여쁘다. 더구나 요즘은 도처에 미인이 넘쳐난다. 서구화한 체격뿐 아니라 성형과 피부관리 기술의 진보에 힘입어 대한민국 여성의 미모 평균은 상향 일로에 있다. 하지만 50대 이후 미모에는 기술이 범접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개인차가 많아진 경제력과 신분, 그리고 건강 상태 외에도 얼굴이 담는 개인 정보가 다양하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감이나 불안, 외로움 같은 심리적, 정서적 현실까지 얼굴은 생중계한다. 정교한 화장으로도 가슴 속 울분과 화를 감추기는 어렵다. 그래서 50살이 넘으며 얼굴은 개인사에 관한 온갖 정보를 담는 이력서가 된다.

60살 이후 신체 조건은 더욱 불리하다. 지구 중력의 당김 법칙이 60년 넘게 적용된 얼굴 피부는 아래로 쳐질 수밖에 없다. 약해진 골반과 무릎 관절 때문에 몸의 대칭 구조가 흔들리기도 한다. 성실하게 일해 온 심장과 폐, 그리고 다른 장기들도 일제히 기능저하 증세를 보인다. 하지만 건강만이 축복인 것은 아니다. 이렇게 삭아가는 육신을 들여다보며 문득 깨닫게 되지 않을까? 우리 모두 언젠가 지구를 떠나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젊고 건강할 때 우리는 이 단순한 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나이 들고 병이 든다고 모두가 불행해지는 건 아니다. 몸을 침범한 병에게 우리의 정신까지 함락당할 때 불행해지는 법. 크고 작은 병을 겪어내면서도 태연히 살아가는 노년의 고수들이 도처에 보인다. 그들은 결심했다. 언젠가 끝날 지상의 날들을 명랑하게 누리기로. 60년 넘게 숙성 발효해 온 지혜로 왕언니들이 지상의 삶에 대처하는 방법을 드디어 터득해낸 것이다. 유효기간이 짧았던 젊음의 문이 닫힌 뒤 찾아온 축복이다. 젊지 않되 아름다운 왕언니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박어진/칼럼니스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지금, 한겨레가 필요합니다.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