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아침으로 즐겨먹는 크루아상. 게티이미지뱅크
헤더 안트 앤더슨의〈아침 식사의 문화사〉에 따르면 아침 식사가 유럽 지역에서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은 시기는 15세기 중반부터다. 중세와 근대 초기 유럽의 극단적인 도덕론자들은 아침 식사를 ‘죽음에 이르는 일곱 가지 죄악의 하나’라고 비난했다.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폭식의 죄 중 하나로 아침 식사를 지목하기도 했다. 당시 민중들에게 아침밥은 입에 올리지 못할 끔찍한 단어였던 셈.
하지만 16세기 말,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에일맥주 한 잔과 귀리 비스킷’을 궁정의 아침 메뉴로 포함하며 부지런한 아침형 인간이 주목받게 되었고 이후 아침 식사를 즐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대중문화의 한 면으로 인식됐다. 드디어 아침밥의 시대가 열린 것. 현대에 와서 아침 식사는 중요한 음식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비록 매일 챙겨 먹지는 못해도, 적절한 아침밥이 건강한 삶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한식은 물론 빵과 팬케이크, 시리얼과 같은 서양의 아침 식사도 이제 한국인의 아침 식탁 한 부분에 자연스레 놓이게 됐다. 그래도 여전히 다른 나라 사람들은 도대체 아침에 무엇을 먹고 마실지 궁금하다. 세계인의 아침 식탁엔 어떤 음식이 놓일까?
그리스 하면 떠오르는 식재료 중 하나가 올리브다. 뜨거운 태양의 지중해 지방에서 자라는 올리브야 말할 것 없이 유명하지만 그리스에서 유난히 많이 자라는 ‘칼라마타 올리브’는 그리스 내에서도 최고의 올리브로 친다. 보통 그리스인들은 이 올리브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릭 샐러드에 넣어 먹는다. 현지에서는 ‘호리아티키 샐러드’라고 불리는 이 샐러드와 요거트를 아침에 즐겨 먹는다. ‘시골 마을 샐러드’라는 뜻의 호리아티키 샐러드는 이름 그대로 투박하고 촌스럽다. 잘게 깍둑깍둑 썬 토마토와 오이, 적양파를 접시에 가득 담은 뒤 자르지 않은 커다란 페타 치즈(양이나 염소의 젖으로 만든 치즈) 덩어리를 얹는 간단한 샐러드다. 올리브 오일과 레몬, 식초를 한 데 섞은 드레싱을 듬뿍 뿌려내면 그리스인의 아침 식사가 완성된다. 달지 않은 꾸덕꾸덕한 그릭 요거트와 함께 가볍게 아침을 여는 식사다.
미식을 종교처럼 여기는, 그야말로 ‘온 국민이 미식가’라고 까지 불리는 프랑스인에게 아침 식사는 가장 중요한 한 끼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 충분한 에너지를 얻는 시간이자, 가족과 한 테이블에 앉아 그날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기 때문이죠.” 막심 마니에즈 시그니엘 서울 총괄 파티시에의 말이다. 그는 프랑스의 전통적인 아침 메뉴로 바게트 타르틴(빵 위에 버터, 햄, 치즈 등 재료를 올린 음식)과 크루아상을 꼽았다. 프랑스인에게 바게트와 크루아상의 존재는 한국인에게 쌀밥 같을 테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간단한 빵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가장 단순한 빵에 잼과 버터를 듬뿍 얹어 뜨거운 커피와 함께 마시는 행위가 아침을 경쾌하게 만들어 주는 가장 큰 요소”라고 마니에즈 파티시에는 덧붙였다.
한국과 유사한 일본의 조식. 임정서 셰프 제공
한국 만큼이나 쌀을 사랑하는 일본에서는 아침에 밥과 간단한 반찬을 즐겨 먹는다. “갓 지은 고슬고슬한 쌀밥에 가츠오부시(가다랑어포)를 얹은 일본식 가지나물, 간단한 장아찌류 정도를 가볍게 먹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교토 가정식당 ‘오반자이 시젠’ 임정서 오너 셰프의 말이다. 시간을 들이지 않고 간단하고 가볍게 아침을 꼭 챙겨 먹는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아침을 더욱 맛있게 만들어 줄 ‘셰프의 킥’은 감자 샐러드. 전날 자기 전 만들어 놓고 냉장고에 두었다가 아침에 꺼내 밥과 먹는 것을 추천했다.
스페인에서는 아침 식사로 ‘판 콘 토마테’와 ‘살모레호’라는 요리를 즐겨 먹는다. 판 콘 토마테는 빵과 토마토라는 뜻으로, 딱딱한 빵 위에 올리브 오일을 바른 뒤 토마토를 쓱쓱 발라먹는 초간단 음식이다. 기호에 따라 생마늘을 함께 비비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식전 빵이나 술안주로 주목받는 요리지만, 스페인에서는 바쁜 아침 간단한 식사로 즐겨 먹는다. 살모레호는 가스파초라는 냉 수프의 변형으로, 빵을 수프에 더 많이 넣어 밀도가 높고 끈적거리는 수프다. 토마토와 빵 조각, 다진 양파와 파프리카를 넣고 믹서에 곱게 간 뒤 냉장고에 넣었다가 아침에 꺼내 죽처럼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 뉴욕만큼, 사람도 많고 취향이 다양한 곳이 있을까? 미국 내에서도 뉴욕은 다른 문화권으로 인정받을 만큼 특별한 곳이다. 베이글이나 샌드위치를 간단하게 먹을 때도 있지만 뉴욕에서 아침 정찬을 먹을 때 상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에그 베네딕트다. 잉글리시 머핀을 살짝 구워 반으로 자른 뒤 햄이나 베이컨, 수란을 얹고 홀랜다이즈 소스(계란 노른자에 버터·레몬·식초 등을 섞은 소스)를 뿌리는 달걀 요리다. 얼핏 들으면 간단한 요리 같지만 수란을 만드는 과정부터 홀랜다이즈 소스를 만드는 일까지 손이 여러 번 가는 번거로운 요리라 ‘호텔 조식의 상징’으로 통하기도 한다. 현재는 세계에서 사랑 받는 아침 메뉴이자, 고급 레스토랑의 ‘올 데이 브런치’ 메뉴로 올라있는, 유명한 아침 식사다. 백문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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