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다른 회사에서 3년간 일하다가 1년 전 이 회사로 스카우트되어 왔습니다. 이곳은 ‘워라밸’이 확실하고 동료들은 친절합니다. 칼퇴근은 기본이고 직장 갑질 하는 사람도 별로 없어요. 갑질을 하면 회사에 소문이 쫙 납니다. 하지만 정말 매일매일 살얼음 같습니다. 사람들의 겉과 속이 너무 다르달까요. 앞에서는 하하호호 하다가 누구 하나 없으면 씹습니다. 오늘은 이 사람 편이었다가 내일은 저 사람 편이 됩니다. 특히 저희 팀에서는 뒷담화가 좀 심각합니다. 저는 그런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적극적으로 맞장구치지 않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는 느낌이 듭니다. 옛날 말로 은따라고 하나요? 제 성격이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공사 구분이 확실한 편이라서 사적인 이야기 나누기를 싫어합니다. 선을 넘어오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요. 순발력 있게 답하는 편도 아니어서 재미가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런데 최근 신입사원이 한명 들어왔습니다. 그 친구는 눈치가 빠르고 붙임성이 좋아 오자마자 곧바로 팀장과 동료들에게 쿵짝 맞는 팀원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더 배제당하고 외면받는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습니다. 업무능력까지 인정받지 못할까 봐 불안합니다. 이제 와서 뒷담화나 불필요한 대화에 끼자니, 그건 또 너무 괴롭습니다. 어떡하면 좋을까요?
A. 직장생활의 가장 어려운 점이란 사실 대부분 인간관계에서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업무적인 과부하나 미래에 대한 불안 같은 것은 내가 어떤 식으로든 노력하면 그 해결책이 보이기도 하고, 또 그를 통해서 어떤 식으로든 성장을 경험하게 될 수 있어요. 그러나 직장 내 인간관계 문제는 좀 다르죠. 어디에나 좋은 사람은 있고, 또 나쁜 사람도 있지만, 직장 내 인간관계는 내가 매일매일 협업이라는 걸 하면서 의견도 부딪히고 감정도 부딪히게 된다는 점에서 참 어렵죠. 거기에다 서열과 소위 라인이라는 문제까지 끼어드니 결코 만만한 주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저 역시 13년 동안 참 오가는 말들이 많은 잡지업계에서 일했는데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끝없이 이어지는 야근보다도 불규칙한 생활패턴보다도 힘들었던 건 결국 사내의 인간관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는 스스로 뒷담화를 좋아하지 않기에 적극적으로 맞장구를 치지 않으신 것은 백번 잘하신 일이라고 생각해요. 옳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것을 억지로 하면서까지 자신의 인격을 내버리고 회사생활 하는 건 어떤 의미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것에는 그에 따른 대가와 반대급부가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자기 태도를 분명히 했을 때, 결국은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는 처지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뒷담화라는 ‘길티 플레저’로 은근한 동료의식과 쾌감을 추구하는 커뮤니티에서, ‘나는 너희들에게 끼지 않겠어’라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겉돌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은, 다르게 취급받을 것을 감당하는 일입니다. 자신의 소중한 것을 유지하고 지키는 과정은, 이렇게 어렵고 또 고단한 일이기도 하고요. 어쩔 수 없지만 그저 이것이 현실이지요. 신나게 뒷담화를 해야 동료로 인정해주는 수준의 커뮤니티에서, 당신에게 공정하고 친절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한가지는 꼭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단지 내가 뒷담화에 끼지 않아서 문제가 된 것인가? 아니면 그 외의 다른 부분에서 내가 다른 사람들과 편안히 어울리지 못하다 보니 멀어져버린 것인가? 전자라면 이 조직에 좀 더 문제가 있는 것이지만, 후자의 경우 나의 책임도 없지는 않습니다. 회사생활을 잘하려면 누구나 명랑하며 쾌활한 성격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조직이라는 곳이 기본적으로 조직 내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매우 중요하기에, 내가 새로운 회사에 입사한 경우 ‘먼저 다가가는 태도’, ‘두루두루 관심을 갖는 태도’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불필요해 보이는 이야기라고 해서 딱 끊기보다, 그 또한 내가 조직을 파악하고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해내기 위한 정보라고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요? 무슨 이야기든 가볍게 들어주고 자신에 대한 가벼운 이야기도 한다면 어땠을까요? 눈에 보이는 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선을 긋는 것이죠. 기존 직원들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내 회사생활에 더욱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든 일이 0 아니면 100이라는 선택만 있는 것이 아니라, 40이나 50이라는 선택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힘들겠지만, 인간관계 문제가 하나도 없는 회사는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며, 내가 그려둔 선을 조금만 희미하게 해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작가(헤르츠컴퍼니 대표)
※사람과의 관계로 인해 고민이 생기셨나요?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 채택된 사연은 익명으로 실리며, 추후 수정이 불가능합니다.
보낼 곳:
es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