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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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회사에 제 입장에서 ‘빌런’으로 느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순진한 사람들 자기편 만들고, 양심의 가책 없이 뒷담화를 잘하는 등 ‘사내 정치’에 능합니다. 이 사람과 잘 지내지 않으면 결국 어떤 식으로든 괴롭힘을 당합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입니다. 그는 특유의 붙임성과 유창한 언변으로 자기 세력을 만들어가는 데 능합니다. 이런 사람과 같이 일하고 대응해야 하는 에너지를 쏟는 게 너무 아깝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퇴사까지 고민 중인데 제 멘털이 너무 약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퇴사 고민 중인 회사원. A. 사연자 분은 아마도 사내 정치 같은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고, 그저 조용히 내 할 일만 하는 분으로 보여요. 이 와중에 어떤 한 사람과 잘 지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괴롭힘까지 당하고 있다고 느끼니 퇴사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겁니다. 하지만 이런 일로 회사를 나가는 것도 후회할 만한 일 같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가족끼리도, 오래된 친구 사이에서도 예기치 못한 불협화음은 존재합니다. 가깝고 편안한 사이라고 해서 모든 생각이 다 비슷하진 않아요. 게다가 인간은 계속해서 변화하는 존재이니, 한 번 좋았던 사이라고 해서 영원히 좋은 것도 아니지요. 경제적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존재하는 회사에서 만난 사이는 어떨까요. 어떤 조직이든 나와 잘 안맞는 사람은 있을 수밖에 없고, 그건 조직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겁니다.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이건 내 인생이고 내 사회생활이기에, 내가 괴롭거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생각해 봐야 하지요. 내 ‘태도’를 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맘에 들지 않는 사람,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내 인생에 나타난 것은 내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에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는 선택할 수 있지요.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통제할 순 없지만, 적어도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지 정할 수는 있지요. “자극과 반응 사이에서 우리는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유대인 출신의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수용소에 끌려가 인간 이하의 참혹한 삶을 보내고 나서 이와 같은 성찰에 이르렀습니다. 대응할 에너지가 아깝게 느껴진다고 하셨는데요. 대응에는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존재를 지키면서도 평화롭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분명히 있지요. 어떤 선택을 할지 당신은 ‘자유’를 갖고 있습니다. 다만 스스로의 생각으로 그 자유를 말살시켰지요. 지금 현재 ‘나는 잘못이 하나도 없고, 저 사람은 빌런이다’라고 생각하기에 그런 성찰을 할 수 없는 상태로 내가 나를 몰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생각에 꽂혀 있으면 전체를 조망할 수 없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생각할수록 괴로우니 ‘대응할 에너지가 아깝다’며 나를 힘있는 존재처럼 느꼈다가, 내가 너무 약한 멘털을 갖고 있는 건 아닌지 자책하는 마음을 극단적으로 오가는 것입니다. 때론 정말 이상한 사람과 일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내 삶과 일이 중요하기에 보통 우리는 어느 정도 견디는 선택을 합니다. 또 도저히 견딜 수 없다면 그만두는 선택을 할 수도 있겠지요. 다음 질문에 답이 명확해야 합니다. “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나는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어디까지 조율해보고 싶은가? 퇴사하고 나서 다음 회사에 또 빌런이 나타나면 그때에도 퇴사라는 방식은 유효하다고 느낄 것인가?” 질문은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나의 존엄성을 보호하면서도 상황을 더 유연하게 만들 방법은 어떤 것이 있나? 이런 어려움이 있을 때 내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조직 내 상사나 시스템이 존재하는가? 그 사람과 진솔하게 따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는가? 그것을 하지 않은 이유는 내 두려움 때문인가, 혹은 다른 이유가 있는가?” 상사에게 낼 보고서에 공을 들이듯이, 내 회사생활을 위해서 나만의 성찰 보고서를 작성해 보세요. 이 문제를 자꾸만 나와 빌런의 대결구도로 보지 마시고, 인간관계의 괴로움이라는 보편적인 관점에서 보면서 성찰한다면, 적어도 충동적인 퇴사보다는 나은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작가, 메디테이션 랩 대표
관계로 인해 고민이 생기셨나요?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 보낼 곳: es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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