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30대 중후반 여성으로, 오래전에 일찍 결혼하고 곧장 이혼했어요. 이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는데, 이제 좀 후회가 됩니다. 주변에서 성가시게 구는 남자들 때문에요. 대부분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나이 많은 기혼자들입니다. 요새는 회사 임원 한분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해요. 무척 점잖은 분인데, 저에게도 처음부터 허물없이 대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어느 날 다짜고짜 이분이 호감을 표시하는 문자를 보내왔어요. 놀랐지만 무대응 원칙으로 답하지 않았고 문자도 지웠죠. 아무 일 없는 듯이 몇달이 흘렀어요. 한데 최근에 이분이 또 다른 비정규직 여성 직원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분은 꽤 소문이 좋지 않은 분이었고, 추근거렸던 이들은 모두 비정규직이거나 이혼했거나 뭔가 취약한 위치에 있는 여자들이었던 거죠. 지금까지 제 주변에도 비슷한 부류의 남자들이 여럿이었다 싶어요. 요즘 세상에… 이혼녀가 주홍글씨일까요? 제가 예민한 걸까요? 이젠 얼굴만 마주쳐도 짜증이 치밀어 오르고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습니다. 사실 못살게 구는 정도도 성희롱이나 성추행이라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견뎌야겠지만, 혼자 끌탕하고 있어요. 아무튼 짜증
A. 직장을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 자체는 그래도 할 만한데, 사람 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것이죠. 어떻게든 업무는 열심히 노력하면 그 안에서 발전이 있는데, 사람들과의 관계는 좀처럼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는 영역이라는 겁니다. 나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주지 않는 상사, 부당한 일이 일어났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상황, 사소한 신경전과 뒷담화들…. 아마 직장생활을 하는 누구라도 이러한 문제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 문제를 보죠.
다짜고짜 호감을 표시하는 회사의 유부남 임원, 부담스럽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존재이지요. 그런 당황스러운 문자에 답을 하기도 애매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하자니 회사의 위계 서열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문자에 답을 안 하신 것은 잘하셨습니다. 중간관리자도 아니고, 임원의 그런 행동을 그 윗선에 보고할 상황도 되지 못했겠죠. 어떤 추가적인 대화도 하지 않은 것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처였습니다.
다만 그다음부터는 ‘대처’의 영역이 아니라 ‘관점’의 영역으로 넘어갑니다. 인사상의 불이익이라든가, 끊임없이 연락을 해왔다거나, 사내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면 거기엔 추가적인 대처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더 대처할 일도 없었죠. 이제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즉 ‘관점’의 문제가 남게 됩니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볼까요? 유부남인데 직급이 나보다 한참 낮은 어떤 직원이 그런 식으로 치근댔다고 생각해보세요. 기분은 비슷하게 나쁘지만 지금보다 스트레스는 조금 덜할 것 같지 않으신가요? 그 연락 이후로 당신이 그 임원을 마주쳤을 때 느끼는 짜증과 스트레스는 ‘나를 쉬운 여자로 보는 건가’라는 마음과, ‘나보다 높은 사람에게 원하는 방식으로 대항할 수 없었다’는 무기력감이 합쳐진 것이죠. 그 사람의 높은 위치가, 당신이 겪는 스트레스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이혼녀라서 저러나?’ ‘내가 예민한 것일까?’라고 자기 자신에 대한 판단으로 반복해서 빠져들지 마세요. 그렇게 하면 영영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 남자들투성이였을 거잖아?’라며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도 좋은 습관은 못 됩니다. 다만 상황을 좀 더 넓게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무엇을 깨달아야 할 것인가?’에 집중하십시오.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냥 딱 그 수준의 인생을 살고 있을 뿐이고, 내가 잠시 그 눈에 띄었을 뿐입니다. 나는 대처를 잘했고, 타깃에서 벗어났죠. 잘 대처한 나를 칭찬해주고, 혹시라도 내 주변의 어떤 여성들이 그 상사와의 일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다면 함께 손잡고 머리 맞대고 고민해주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면 함께 목소리를 내면 됩니다. 불편하고 괴로운 과거의 일 때문에 자기를 비하하고 스스로의 삶을 짜증 가득한 삶으로 만드실 건가요, 아니면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삶으로 만드실 건가요? 선택은 둘 중 하나입니다.
작가, 메디테이션 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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