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를 누르며
[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합니다.
정확히 열 번 찍었습니다. 한 그루가 아닌 수백 그루가 넘어갔을 겁니다. 신문을 열 번 찍으려면 그만큼의 종이가, 나무가 필요하겠지요. 가 나무의 희생 위에서 10호를 발행합니다.
열 번 찍어 독자는 넘어갔을까요. 첫 호를 내면서 걱정이 없지 않았습니다. 한겨레로서는 새로운 감수성으로 접근하는 낯선 생활문화 매거진이었기 때문입니다. 제호부터 한글이 아니었습니다. 신문의 전통적 문법으로 볼 땐 선정적이라 비판받을 기사도 있었습니다. 물신주의 소비 욕망을 부추긴다는 혐의를 받을 공산도 컸습니다. 욕을 잔뜩 먹을 각오를 했습니다. 실제 “한겨레에서 지금 뭐 하는 거냐”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습니다. 조금 섭섭합니다. 욕을 먹어서가 아닙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덜 먹어서, 배가 안 불러서 그렇습니다.
열 번 찍었는데도 안 넘어간 독자 여러분. 스무 번 찍을 땐 넘어가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러려면 더 재미있고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도낏날을 갈아야 하겠지요. 독자들의 신산한 삶이 조금은 신선해지도록 발랄하고 경쾌한 포즈를 취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10호 기념으로 짚고 넘어갈 사항 한 가지. 아직도 우리의 이름을 헷갈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는 ‘이스케이프’가 아니라 ‘이에스씨’라는 거. 물론 컴퓨터의 ‘Esc’자판을 ‘이스케이프’라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제호는 통일해야겠지요. ‘이스케이프’(escape)는 어원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에스씨’입니다.
마지막으로 지면 감축 계획을 알립니다. 이번 호부터 4주간 매주 12쪽을 발행합니다. 4쪽씩 줄어드는 셈입니다. 한겨레신문사의 여름철 지면 방침에 따른 조치입니다. 가끔 고정 칼럼이 빠질 수도 있으니 유의하십시오. 여러분도 일을 줄이시고 얼른 휴가 다녀오시길!
고경태/ <한겨레> 매거진팀장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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