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조두진 제공
[매거진 Esc] 여행에서 건진 보물 / 소설가 조두진의 여행 노트
소설가 조두진(40)씨가 여행에서 건진 보물은 그의 여행 노트다. 잃어버린 여행 노트를 말 그대로 ‘건졌다’.
올해 초 경북 봉화군 석포리의 승부역엘 갔다. 영주에서 출발한 영동선 열차가 산굽이를 돌고 돌아 열두번째 만나는 아름다운 간이역이다. 더불어 자동차로 들어갈 수 없는, 기차 아니면 오로지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역이다. 승부역 뒤편으로 산이 솟았고, 앞으로는 강이 가로막는다. 낙동강 상류를 가로지르는 출렁다리를 건너야 승부역에 닿는다.
조두진씨가 도착할 즈음 역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루 여섯 차례밖에 승객을 토해내지 않는 역이다. 그 또한 출렁다리를 슬금슬금 건너 플랫폼의 적막에 다가갔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기차가 5분 후에 들어옵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들리는 것이 아닌가. 승객도 없는 역에 안내방송이라니. 귀신이라도 있는 건가. 안내방송의 주인과 통성명을 하고 물었다. 역장인 남진동(57)씨의 말. “가끔 사람이 지나다녀요. 등산 갔다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고요. 사고라도 나면 안 되니까요.”
고즈넉한 승부역이 맘에 들었다. 역장의 마음 씀씀이도 승부역과 어울렸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대구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수첩을 놓고 왔다. 서둘러 역장에게 전화를 하고 다시 돌아간 승부역. 출렁다리 기둥 아래 노트의 끝들이 팔랑팔랑 날리고 있었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돌멩이로 노트를 누른 것이다.
강 건너편 노트를 두고 돌아가는 남진동 역장이 보였다. 조두진씨는 팔을 들어 크게 흔들었다. 역장도 고개를 한번 숙이더니, 작게 손을 흔들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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