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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농담하기 힘들군요

등록 2008-02-27 22:32

중국·인도·말레이인이 사는 싱가포르의 공용어는 영어다. 하지만 세 나라의 사투리가 끼어든 영어와 관련한 유머도 많다. 남종영 기자
중국·인도·말레이인이 사는 싱가포르의 공용어는 영어다. 하지만 세 나라의 사투리가 끼어든 영어와 관련한 유머도 많다. 남종영 기자
[매거진 Esc] 리처드 파월의 아시안 잉글리시 9
언어유희의 방법이 문화마다 달라 미끄러지기 일쑤
얼마 전 한 광고전화를 받았다. 한 부인이 수화기 저편에서 ‘분묘를 팔고 있는데 관심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일본어로 대답했다. “나는 외국인이거든요. 그래서 죽을 땐 고향에 돌아가 있을 것 같아요.” 그네는 웃으며 나에게 “실용적인 사람”이라고 칭찬했고, 통화는 즐겁게 마무리됐다. 일면식도 없었지만, 우리에겐 진지한 대화가 아니라는 공감이 있었다. 전화를 끊고 동네 편의점에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갔다. 나는 편의점 직원에게 아이스크림을 내놓으며 농담을 던졌다. “아이스크림을 데워서 주진 말아요.” 결과는 어땠을까? 점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모든 문화에는 과장이나 역설 등 언어유희가 존재한다. 하지만 언어로 노는 방법은 문화마다 다르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일본인들은 웬만해선 진지함을 잃지 않는다.(오직 외국인만 편의점에서 농담할 것이다!) 반면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겐 그런 금기가 없다.

유머란 게 항상 통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자국 문화에서 모국어를 쓸 때도 유머는 가끔씩 미끄러진다. 그러니 외국어로 농담했다가 실패해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반대로 의도하지 않는데도 상대방에게 유머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니까.

영국인과 오스트레일리아인은 유머감각이 없기로 유명하다. 아마도 불명확함을 싫어하는 그들의 문화 특성 때문일 것이다. 이 사람들은 바로 눈에 띄는 유머보다도 혀를 굴려 억양을 재밌게 하거나 관용어를 바꾸는 식으로 유머를 구사한다. 이런 유머는 제2언어로 영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따라 하기 어렵다.

<잉글리시 투데이>에서 루크 프로도모스는 ‘영어 토박이’들이 문화적 연대를 과시하고자 어떻게 유머를 구사하는지 몇몇 보기를 들어 설명했다. 폭우를 뜻하는 ‘cats and dogs’(고양이와 개들)을 비틀어 이슬비를 ‘kittens and puppies’(새끼 고양이와 강아지들)이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아마 이 사람들은 ‘말 앞에 수레를 놓지 마라’(putting the cart before the horse·계획을 세우기 전에 행동하지 말라는 뜻)라는 관용적인 표현에는 수레(cart) 대신 고양이(cat)를 넣을 것이다.

불행히도 외국인에게 이런 농담을 하다간 자주 실패하기 마련이다. 외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영국인 교사가 “You can say that again!”(천부당 만부당한 말씀이죠!·강한 긍정으로 씀)이라고 말하자, 동료 교사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Ok, I’ll say it again!”(응, 다시 말해줄게!) 영국인의 유머는 실패했다. 그래서 그네는 자신이 사용한 표현을 다시 설명해야만 했다. 아마 동료의 영어는 생각만큼 훌륭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문법적 유창함 만큼이나 유머의 기술은 한 사람이 언어를 자기 자신의 것으로 얼마나 소화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리처드 파월
리처드 파월
싱가포르 유머 사이트인 토킹콕닷컴(talkingcock.com)의 운영자는 표준 싱가포르영어(정통 영국영어와 가깝다)에 능통하다. 하지만 그는 시장과 거리에서 들리는 말레이어와 푸젠어(중국 푸젠 지역의 방언)가 다채롭게 섞인 싱글리시(싱가포르식 영어)를 사랑한다. 그의 싱가포르 유머도 여기에 많이 기댄다. 하지만 싱가포르 정부는 학교에서 싱글리시 사용을 억제한다. 심지어 <영화판 토킹콕닷컴>이라는 영화의 예고편은 싱가포르 정부에서 상영을 금지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바른 영어 사용하기 운동’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처드 파월 일본대교수


번역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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