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문득 생각난…
어릴 적 나는 유명한 동네에 살았다. 초등학교 때만 해도 안 그랬는데, 중학교 때 갑자기 이름이 알려졌다. 오로지 며칠 전 돌아가신 박경리 선생 덕이다. 아시는가,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어느 날 동네 친구 하나가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너 <토지> 알지? 우리 집 건너에 그거 쓴 할머니가 이사 온 거 알아? 어제 만났거든.” 부러웠다. 나도 보고 싶었다. 그 근처를 서성여 봤지만, 늘 불발로 끝난 기억이 쓰리다.
그분은 우리 동네의 미적 가치를 새삼 일깨워 주셨다. 단구동의 텃밭에서 언론 인터뷰를 할 때마다 ‘주변 풍광의 아름다움’을 찬양했기 때문이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동쪽의 치악산, 남쪽의 백운산. 알고 보면 한 폭의 산수화였는데, 어릴 적엔 너무 무심했다.
1년 전쯤엔 나와 추억을 공유하는 소설가를 발견했다. 소설집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의 이기호였다. 그 책에 실린 단편 <원주통신>엔, 앞서 밝힌 동네 친구 같은 주인공이 등장한다. 길상과 서희, 토지라는 단어가 뒤죽박죽되면서 웃다 뒤집어진다. 선생의 부음을 접하며 가장 먼저 <원주통신>이 생각났다. 독자들에게도 권하는 바이다. 추모의 마음과 함께….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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