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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사이드는 잊어라…월드컵은 드라마다

등록 2010-06-16 20:12수정 2010-06-22 14:57

오프사이드는 잊어라…월드컵은 드라마다. AP 연합뉴스
오프사이드는 잊어라…월드컵은 드라마다. AP 연합뉴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한국·스페인·칠레 등 각국 축구 마니아 여성들에게 듣는 ‘월드컵 100배 즐기기’
축구는 ‘오프사이드란 말이지’를 반복하며 규칙과 선수 기량에 집착하는 오빠들만의 스포츠가 아니다. 월드컵 역시 ‘저걸 축구라고 하냐’를 외치며 욕하기에 바쁜 아빠들만의 대회도 아니다. 여자들에게도 축구와 월드컵을 즐기는 나름의 이유와 방법이 있다. 그래서 한국과 스페인, 저 멀리 칠레, 영국, 그리스 등 각국의 축구 마니아인 여성들에게 전자우편 등으로 질문을 던졌다.

① 월드컵을 왜 기다렸나요?

② 축구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이은혜 <스포탈코리아> 기자/한국

이은혜 <스포탈코리아> 기자/한국
이은혜 <스포탈코리아> 기자/한국

① “단일종목 중에 축구만큼 서로 다른 종류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스포츠는 없어요. 그중에서도 월드컵만큼 많은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할 수 있는 존재는 없죠. 시간이 흐를수록 엄청난 상업성과 마케팅에 농락당하고 있지만 여전히 축구는 축구로 인해 이 한자리에 모인 그 수많은 사람들의 ‘꿈’을 겨루는 대회예요. 남아공이라는 나라를 더 좋은 나라로 만들 수 있다는 현지 사람들의 꿈, 한국 축구의 16강 진출을 향한 꿈, 월드컵 우승을 차지할 수 있다는 스페인의 꿈. 그 모든 꿈은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현실이 되죠. 8만 관중과 함께하는 그라운드 위에서 목격하는 그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 세상의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니에요.”


② “국가대항전인 만큼 ‘마이 팀’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요. 한국이어도 상관없고, ‘잘생긴’ 토레스가 있는 스페인이나 호날두가 있지만 팀 수준에는 영 확신이 안 서는 포르투갈이어도 괜찮고, 엄친아 카카가 이끄는 브라질도 괜찮아요.”

이은하 스포츠 전문 진행자, <축구 아는 여자> 저자/한국

이은하 스포츠 전문 진행자, <축구 아는 여자> 저자/한국
이은하 스포츠 전문 진행자, <축구 아는 여자> 저자/한국

① “월드컵은 올림픽처럼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대회지만 전세계가 ‘축구’라는 단일 종목에만 집중해 자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을 집중적으로 응원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이때는 축구를 좋아하지 않던 사람들도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한 번쯤은 보게 되지 않나요? 세상 모든 시름을 잠시나마 축구에 집중하며 잊고 지낼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아닌가 싶어요. 국가대항 경기이다 보니 더 긴장도 되고 응원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스포츠는 전쟁이 아니기에 경기 이후에도 서로 악수하고 격려하고 뛰어난 선수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칭찬할 수 있어요. 또 세계적인 플레이어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건 축구팬들에게는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죠.”

② “모르는 건 묻고 또 물어봐야 해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요? 전후반 90분 내내 공 하나 놓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에 왜 저리들 열광하는지 그냥 지나치지 말고 그 열광의 무리 속에 함께 빠져보는 거예요. 또 월드컵을 온 가족이 하나가 될 수 있는 화합의 장으로 만들어 봐요. 좀처럼 함께 모이기 어렵지만 경기가 있는 날만큼은 온 가족이 붉은색 티셔츠를 맞춰 입고 갖가지 응원도구도 준비해서 같은 목소리로 응원을 하며 즐기는 거죠. 막히고 답답했던 허물을 떨쳐낼 좋은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거예요. 또 좋아하는 선수 한두 명은 꼭 만들어요.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선수들 중에도 좋아하는 선수들을 정해놓으면 축구 보는 재미가 더해질 수 있을 거예요. 선수들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에 무궁무진하거든요. 경기 장면뿐만 아니라 사생활과 관련된 뒷이야기나 갖가지 정보들, 유니폼이 아닌 평상복을 입은 모습까지도 만나볼 수 있어요.”

아리린 회사원/그리스

아리린 회사원/그리스
아리린 회사원/그리스

① “그리스가 월드컵에 출전하기 때문에 더욱 월드컵을 기다렸어요. 비록 한국전에서는 안타깝게 졌지만, 친구들과 함께 응원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어요. 그리스 국가대표팀의 주장인 요르고스 카라구니스 선수를 정말 좋아해요. 예전부터 그리스팀의 핵심 선수여서 더 정이 가죠. 다음 경기에서는 꼭 골을 넣으면 좋겠어요.”

②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즐겨 봤어요. 월드컵을 즐기는 방법 중에 하나는 여자들끼리 보는 것보다 자칭 축구전문가라고 하는 남자친구들과 함께 보는 거예요. 남자친구들에게 축구팀이나 축구선수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물어볼 수도 있고, 지금 경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물어볼 수 있어요. 물론 지나치게 잘난 척하는 건 경계해야겠지만 말이죠. 또 여자들 눈에만 보이는 것들을 남자들에게 얘기해주면서 그들의 시각을 좀더 넓혀주는 것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나 클라바 번역가/스페인(바르셀로나)

아나 클라바 번역가/스페인(바르셀로나)
아나 클라바 번역가/스페인(바르셀로나)

① “사람들은 월드컵을 나라 간의 대리전이라고 하지만,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해요. 월드컵이 열리면 ‘최고의 축구 팀’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나라 전체가 단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경제, 사회적 격차 등 여러 국가의 내부 문제에서 잠시 떠나 승리하기 위해 싸우죠. 축구를 더 즐기려면 스페인에 오라고 할 만큼 스페인에서는 어디에 가든 축구 얘기를 해요. 스페인에서 축구는 전국민적인 스포츠예요. 지역마다 있는 축구팀은 그 지역 사람들의 정체성이나 다름없죠. 저는 바르셀로나에 살고 있어 무조건 ‘바르사’(FC 바르셀로나의 애칭)의 팬이에요. 역사적으로 바르셀로나와 수도인 마드리드(레알 마드리드의 연고지)는 사이가 좋지 않죠. 그래도 스페인 국가대표팀이 소집되면 스페인 곳곳에서 온 선수들이 적대감은 잊고 한 팀이 돼요. 정말 아름다워요. 특히 바르셀로나에 있는 축구학교인 ‘라 마시아’에서 성장한 선수들을 좋아해요. 그들은 자라난 마을이 아무리 작아도, 가족이 아무리 가난해도 누구나 ‘미래의 대표 선수’가 될 수 있다는 ‘카탈루냐의 꿈’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거든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이자, 바르사의 주장인 푸욜 선수처럼요.”

② “스페인 사람들은 바에서 맥주를 마시고 ‘타파스’(전채요리)를 먹으면서 축구를 보는 걸 정말 좋아해요. 특히 일요일이나 토요일 같은 주말에 그렇게 축구를 보는 건 관습이나 다름없죠. 여자들도 이러한 관습에서 예외가 아니에요. 여자친구들과 모여 바에서 축구를 보는 게 재미있어요. 물론 남자들보다 술은 좀 덜 마시지만요.”

클레어 맥도널드 작가/영국(런던)

클레어 맥도널드 작가/영국(런던)
클레어 맥도널드 작가/영국(런던)

① “이번 월드컵은 특히 더 기다렸어요. 제 할머니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이시거든요. 게다가 영국과 남아공은 시차가 1시간밖에 나지 않아서 더 좋아요. 저에게 축구는 기술의 스포츠이자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는 기회이기도 해요. 물론 저는 이번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팀을 응원하고 있어요. 평소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인데, 굉장한 경기를 해내는 박지성 선수를 무척이나 좋아한답니다.”

② “월드컵 기간 동안 꼭 시간을 내서 친구들을 모아 차려입고 웃으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파티를 열어요. 물론 그날 함께 본 경기 결과에 대해 내기를 하죠. 제가 월드컵을 즐기는 노하우를 알려줄게요. 1. 여자친구들을 모은다 2. 한가지 드레스 코드로 멋을 낸다(그날 축구 경기를 하는 국가의 전통의상도 괜찮아요) 3. 축구 경기를 보면서 새로운 칵테일을 만들어본다. 이렇게 하면 여자친구들끼리도 충분히 즐겁게 축구 경기를 즐길 수 있어요.”

카밀라 마르도네스 사라 스페인어·영어 교사/칠레

카밀라 마르도네스 사라 스페인어·영어 교사/칠레
카밀라 마르도네스 사라 스페인어·영어 교사/칠레

① “평소에도 축구를 좋아하지만 월드컵 때 가장 즐거워요. 선수들이 자신의 나라를 대표해서 경기를 할 때는 소속팀에서와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더 단결하면서 더 큰 힘을 보여주죠. 이번 칠레 경기에 기대가 커요. 젊고 똑똑한 선수들과 코치진이 있거든요. 축구를 보통 남자들의 스포츠라고 하지만 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쟁에 대한 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여자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고 생각해요. 요즘 칠레에는 여자팀이 많이 늘고 있죠. 축구를 좋아하는 또다른 이유는 사실 축구가 다른 스포츠보다는 규칙이 간단한 편이기 때문이에요. 열정과 움직임이 가장 중요한 스포츠죠. 물론 선수들도 멋지고요. 특히 칠레 국가대표팀의 호르헤 발디비아 선수는 정말 빠르고 강하고 공격적이면서도 전략적이에요. 그래서 가장 좋아하죠.”

② “보통 축구를 볼 때는 친구들과 집에서 봐요. 가족들과 볼 때도 있죠. 어디에서 누구와 보든 꼭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바비큐를 먹으면서 즐겨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보면 더 재미있거든요. 또 축구 경기를 볼 때 미신 같은 게 있는데, 절대 우리 팀에 대해 나쁜 얘기를 하지 않는 거죠. 경기 내내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해요. 한번은 칠레 국가대표팀이 이기고 있었는데 경기 2분을 남겨놓고 제가 물을 마시러 나갔어요. 그런데 그사이에 두 골을 내주고 만 거예요. 그 이후부터 저는 축구 경기를 볼 때는 절대 방에서 나갈 수 없게 됐어요. 이런 모든 게 축구를 즐기는 방법인 것 같아요.”

토레방 ‘남자의 로망은 갑빠’ 블로그 운영자/한국

토레방 ‘남자의 로망은 갑빠’ 블로그 운영자/한국
토레방 ‘남자의 로망은 갑빠’ 블로그 운영자/한국

① “저는 온 국민을 거리로 나가게 했던 2002년 월드컵 때도 거리응원 한번 안해봤어요. 그러다가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축구의 묘미를 깨달았고, 정신차려 보니 축구가 취미인 여자가 됐죠. 축구는 참 이상한 스포츠예요. 한 골을 넣기 위해 처절하게 심장이 터지도록 뛰어야 하는 단순한 스포츠지만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가 없는 재미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요. 축구를 왜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냥 생활이라서’ 빼고는 적합한 말이 없어요. 아이돌을 좋아하듯 선수로 축구계에 입문했다가 그 선수가 속해 있던 팀과 그 모든 것을 좋아하게 된 순간부터 팀의 성적에 따라 바이오리듬마저 달라져요. 월드컵은 왜 특별하냐고요? 평범했던 식단이 각 나라에서 가장 잘한다는 선수들로 구성된 6성 호텔급 럭셔리 식단 메뉴로 바뀌는 거잖아요. 전세계에서 공식적으로 한달간 축구를 즐길 멍석을 깔아주는데 알아서 취향대로 골라 먹으며 다이어트고 뭐고 일단 즐기는 거예요.”

② “한국은 ‘축덕녀’(축구+덕후+여자)가 자발적으로 만들어지기 쉽지 않은 환경이에요. 발야구가 전부인 부실한 체육교육을 받고 자란 언니들에게 축구의 규칙이나 전술은 외계어죠. 땀내 나는 스포츠 정도로 축구를 생각하는 언니들에게 이번 월드컵은 평생 즐거운 취미가 생길 수도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일단 몰라도 봐요. 응원하는 팀이 이기는 것만큼 짜릿한 게 없지만 열심히 뛰었는데 아쉽게 꿈이 좌절되는 모든 것을 지켜보며 그들이 쓰는 드라마를 한번쯤 무작정 지켜보면 같이 웃고 우는 충만한 일체감에 행복해져요. ‘일단 봐라’ 그게 답이에요.”

안드레아 대학생/오스트리아

안드레아 대학생/오스트리아
안드레아 대학생/오스트리아

① “월드컵이 시작되면 어디를 가든 그곳이 축제의 현장으로 변해요. 오스트리아가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여기저기에서 파티가 많이 열리고, 그만큼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아져요. 사실 저는 축구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남자친구가 열정적인 축구팬이어서 저도 따라 보기 시작했고, 같이 좋아하게 됐죠. 챔피언스리그 같은 큰 규모의 축구 경기를 자주 챙겨봐요. 이번에는 오스트리아가 월드컵에 나가지 못해서 이웃 국가인 독일 국가대표팀을 응원해요. 특히 키는 작지만 열심히 뛰는 모습이 믿음직스러운 필리프 람 선수의 팬이에요.”

② “오스트리아에서는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경기를 응원하기보다는 편안하게 감상해요. 친한 사람들과 공공장소에서 맥주를 마시며 느긋하게 보는 게 좋아요. 특히 잘생긴 축구 선수가 나오면 그 선수 위주로 응원을 하는데, 축구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여자친구들에게 강력 추천하는 방법이에요.”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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