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커버스토리
‘주사파’의 나라
‘주사파’의 나라
현대인들의 과도한 업무와 극심한 스트레스, 외모 지상주의와 동안 열풍을 교묘하게 파고든 것이 ‘주사’다. 박근혜 대통령이 수시로 주사에 의존했던 것처럼, 이제 ‘주사’는 현대인의 만병통치약의 하나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젊고 예쁘게 해주는 주사가 있다고 들었지만, 종류가 그리 많을 줄은….” 국민들이 깜짝 놀란 건 당연했다. 그 양이 실로 어마어마하다. 청와대가 2014년 1월부터 올해 9월까지 △태반주사(라이넥주 150개·멜스몬주 50개) 200개 △감초주사(히시파겐씨주) 100개 △백옥주사(루치온주) 60개 △마늘주사(푸르설타민주) 50개를 구입했다. 전문가들도 이 정도의 수량이면 일주일에 최소 1~2회 맞을 수준이라며 ‘중독’에 가깝다고 혀를 내둘렀다. 박근혜 대통령은 왜 ‘주사’에 빠졌나. 젊음과 아름다움을 잃고 싶지 않은 본능에 더해 어쩌면 ‘외롭고, 고독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많은 현대인이 ‘주사파’가 되어가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치열한 생존경쟁, 과도한 업무와 감정노동의 연속인 대인관계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나 자신감 상실과 소외감·두려움을 해결하는 방편으로 손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주사’이기 때문이다. 불법도 아니고, 함께 해야 할 ‘누군가’가 필요하지도 않다. 이들은 혼밥, 혼술, 혼삶이 대세가 된 지금, ‘주사’가 유일한 처방전이자 안식처라고 말한다. 외모 지상주의와 탱탱하고 생기 넘치는 동안 열풍 속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야기한 씁쓸한 단면이기도 하다. 주사는 ‘젊어지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을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중국 진나라 시황제가 영원히 늙지 않고 살 수 있는 ‘불로초’를 찾아 헤맸듯, 사람들은 주사를 ‘현대판 불로초’로 처방받는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청담동의 병원 골목에선 ‘갱년기 증상 개선’ ‘원기 회복’ ‘젊음 유지’ 등으로 환자들을 현혹하는 병원의 홍보물과 주사를 맞기 위해 병원을 찾는 이들이 넘쳐난다. 이제 웬만한 동네 병원에서도 태반주사나 백옥주사, 보톡스를 시술한다. “대통령도 수시로 맞았다고 입소문이 난 뒤 주사 한번 맞아보겠다는 사람들이 엄청 늘었어요.” 지난 14일 서울 강남의 한 피부과에서 만난 최수정(가명·47)씨의 말이다. 그 역시 그동안 망설이다 최근에 주사 논란을 보면서 용기를 냈다. 백옥·태반·감초 주사를 묶어 패키지로 ‘길라임 주사’가 저렴하게 나왔다는 추천을 받았다. “길라임처럼 예뻐지면 내 삶이 조금은 달라질까 하는 기대감이 있어요. 갱년기 증상 때문에 우울한데, 효과가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비급여 의약품의 허가범위 및 사용실태 및 해외 관리사례 조사’를 보면, 영양주사 처방액은 2011년 342억2200만원에서 2014년 511억1800만원으로 3년 만에 50% 남짓 증가했다. 비급여 항목 특성상 정확하게 처방 통계가 잡히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시장 규모는 이보다 훨씬 더 크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미용 주사 시술 논란 이후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길라임 주사’는 ‘주사’ 시장의 새 강자로 떠올랐다. 그만큼 ‘주사파’의 유혹에 놓이는 이들도 많아질 것이다. ‘주사파’가 될 것이냐, 또 다른 ‘독자 노선’을 걸을 것이냐.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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