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연은 젊어 보이고, 관리하기 편한 지금의 민머리를 사랑한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대머리, 빡빡머리가 어때서요?”
남궁연(50)은 민머리의 대명사다. 24년째 한결같이 같은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대머리라서? 착각은 금물. 그는 탈모 환자도, 대머리도 아니다. “만져보실래요?” 곁에 있던 사진기자의 손을 불쑥 잡아 머리에 갖다 대며 그가 말했다. “아직도 모근이 살아 있어요. 하하. 지금도 마음먹으면 기를 수는 있어요. 그런데 전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탈모 때문에 빡빡 깎은 줄 알았다’고 물었더라면 머쓱할 뻔했다.
그렇다면 왜? 1994년 어머니의 직장암 발병 소식을 들은 것이 계기다. “말기였고, 시한부 선고를 받았죠. 어머니 건강도 챙기지 못한 죄책감에 욕실에서 가위로 마구 머리카락을 잘랐어요. 정신 차리고 다듬으려 보니 너무 엉망이었어요. 삭발이 최선이었죠.” 그런데 웬걸. 빡빡머리는 그에게 최적의 헤어스타일이었다. “얼굴이 커서 불만이었는데, 얼굴도 작아 보이고 심지어 젊어 보이기까지 했어요. 불이익을 당하는 한이 있어도 다시 못 기르겠더라고요.” 당시만 해도 빡빡머리는 사회에 불만 있는 ‘불량아’거나, ‘쌍라이트’로 대변되는 희화화된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데도 그는 그 시대를 관통하며 자신의 ‘빡빡머리’를 지켜왔다.
무명의 드러머였던 그의 삭발은 파격적이었다. 밥벌이를 포기해도 좋다는 ‘저항’처럼 읽히기에 충분했다. “1996~97년만 해도 삭발은 방송 출연 금지였어요. 클론의 구준엽도 두건을 써야 무대에 오를 수 있었으니까요.” 그는 운이 좋았다. 삭발을 가리지 않고 한국방송 <이문세쇼>에 출연할 기회를 얻게 됐다. “제가 머리 깎은 사연을 들은 ㅇ부장이 ‘넌 효자니까 괜찮아’ 양해해줬다”고 한다.
24년째 한결같이 빡빡머리를 유지하고 있는 남궁연은 ‘민머리 예찬론자’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그는 민머리가 “저처럼 ‘대두’이거나 얼굴형이 긴 사람에게 잘 어울린다”고 했다. “저 사진 잘 받죠? 오늘 입은 옷도 너무 잘 어울리죠? 저 하나도 안 늙었죠? 그게 다 장점이에요. 사진을 찍을 때 정체성이 잘 드러나고, 유행이 지났거나 심지어 너무 앞서간 파격적인 옷을 입어도 두루 잘 어울려요. 흰 도화지에 점 하나 찍으면 예술작품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보면 됩니다. 스타일링하기도 편해요. 소품 하나만 해도 분위기가 확 달라져요.” 그러고 보면 브루스 윌리스 같은 외국 배우까지 갈 것도 없이 방송인 홍석천이나 구준엽 등만 봐도 민머리가 세련된 스타일링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하지만 외모가 경쟁력이 된 세상, 대머리를 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탈모 인구 1천만명, 누구나 탈모를 겪을 수 있는데도 취업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당한다. ‘배우자가 대머리만 아니면 된다’는 여성도 적지 않다. 남자친구가 대머리여서 파혼했다는 여성, 친구의 “대머리”라는 놀림에 화가 나 살인청부한 남성, 대머리 때문에 취업에 실패한 남성…. 남궁연은 그 점이 안타깝다. “대머리를 숨길 게 아니라 당당하게 빡빡 깎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그게 가능할까? 아직 모근이 살아 있는 남궁연이 대머리의 절박한 심정을 어찌 알겠냐고 말할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는 나만의 헤어스타일로 민머리를 즐기자고 한다. “눈이 나쁘면 안경을 당연히 써야 한다고 여기죠. 기왕 쓸 거면 멋진 안경을 쓰겠다고 해요. 대머리도 마찬가지예요. 머리카락 때문에 불행해하고 슬퍼할 게 아니라, 당당하고 멋진 빡빡이가 되자는 거죠.”
‘멋진 빡빡이’라니? 그는 이틀에 한번씩 꼬박꼬박 두피 면도를 하고, 로션을 바른다. 2년 전쯤엔 몸무게도 14㎏이나 줄였다. “빡빡머리가 세련된 이미지의 전형이 되고, 각광받는 세상이 왔으면” 해서다. 그러려면 첫째 핏이 좋도록 몸을 만들고, 둘째 부지런히 머리카락을 잘라야 하며, 셋째 표정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빡빡머리는 표정이 좋지 않거나 인상을 쓰면 불쾌한 인상을 주기 쉬워요. 옷은 트레이닝복조차도 반드시 몸에 붙게 입어야 합니다. 탈모 치료에 목을 매고 가발로 대머리를 감추려는 비용과 노력을, 몸을 가꾸고 옷과 차를 사는 데 쓰는 게 오히려 나을 수 있어요. 가발, 모발이식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듯 빡빡머리도 선택지일 수 있다는 말이죠.” 남궁연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대머리,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대머리든 아니든 당당하고 멋있게 빡빡머리를 누려라. 이런 용기 있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탈모인에 관한 인식도 개선될 것이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