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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이건 아닌 거 같아요’ 그 마음을 기억하세요

등록 2018-11-07 19:55수정 2018-11-07 21:03

곽정은의 단호한 러브 클리닉

Q 한 달 만난 사람과 헤어진 뒤 겪은 방황
‘사람은 사람으로 잊으라’지만 더 악화해
남의 의견에 지나치게 귀기울이는 걸까요


A 외로움을 외면하고 도망치고 싶어 한 선택들
안정감은 타인에만 의지해서 얻을 수 없어
돌아보고 스스로 존중하고 기억하며 성장하길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Q 저는 26살입니다. 5년 연애한 이와 헤어지고 한 달 만난 사람과도 헤어졌어요. 그런데 5년 만난 사람보다 한 달 만난 사람을 더 잊기가 힘들더라고요. 너무 짧게 만나서 미련을 못 버리나 싶기도 합니다. 정말 방황을 많이 했어요. 한 달 반 동안 연락하고 싶은 걸 꾹꾹 눌러 참았어요. 제가 연락을 참았던 이유는, 그 사람에게서 “아니다”란 답이 올 것이 분명해서입니다.

제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친구들이 연락해 만나면 현실을 받아들이고 잊을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새벽까지 생각난 사람은 네가 처음’이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장은 안 왔어요. 그래서 정말 그 사람을 마음속에서 다 지웠고, 그 사람한테 연락이 와도 지금은 만날 맘이 없어졌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조언해서 그런 문자를 보냈지만, 제가 너무 초라하고 부끄럽네요. 그 사람을 잊고 싶어서 소개팅도 하고 술도 마시고, 클럽도 가서 남자도 만났지요. 제가 좋다는 사람에게 연락도 했어요. 사람은 사람으로 잊으라고 하잖아요. 그렇게 하려니 제 자신이 더 악화하는 것 같았어요. 저만의 방법을 찾고 싶은데 너무 어려워요. 5년 만난 사람과 헤어지고 온전히 저한테 집중하고 싶었는데. 자꾸 방황하는 제 모습이 너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아요. 5년 사귄 그 사람을 만날 때, 안정적이고 편안한 제 모습이 맘에 들었거든요. 그렇다고 5년 사귄 그 사람과 다시 만나고 싶은 건 절대 아니에요.

그러다 최근 나이트클럽에서 한 남자를 만났어요. 처음 본 그 날 제게 사귀자고 하더군요. 갑작스러운 제안이라서 머뭇거리다가 일단 답을 피했어요. 다음날 그에게서 또 만나자고 연락이 왔는데, 선약이 있어서 힘들다고 했지요. 그 다음 날에 또 연락이 와 결국 만났어요. 그런데 그 이후 연락이 없는 겁니다. 저는 상대가 좋다고 할 때는 반응이 없다가 그가 무관심하면 끌리나 봐요. 그 다음 날 밤에 제가 연락을 먼저 했어요. 그가 제가 있는 쪽으로 갈 테니 잠깐만 보자고 하더군요. 그때는 친구들을 만나고 있었는데 그 근처로 그가 왔지요. 그런데 친구가 나가지 말라는 거예요. 저를 정말 잡고 싶은 사람이면 기다리거나 바로 이 자리로 올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저는 확실히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친구까지 있는 자리에 그가 올 리가 없다고 친구에게 말했죠. 친구는 친해지고 싶어서 만난 사이가 아니라, 이미 이성으로 만난 사이라고 조언해줬어요.

제가 그 남자에게 친구와 같이 있는 곳까지 들어와 줄 수 있느냐고 묻고, 만약 힘들다면 좀 더 기다려 달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그가 화를 내더군요. 그래서 전 친구의 의견에 따라 만나러 나가지 않았고, 그 뒤로는 연락도 아예 끊겼어요. 저는 이런 제 행동이 그 사람에게 미안해서 사과하려고 했지요. 친구는 “진심인 사람한테 미안한 감정을 가져야 하는 거지, 너를 어떻게 좀 해보려고 한 사람한테 왜 연락하느냐”고 하는 거예요. 그가 정말 저한테 진심이 없었을까요? 친구의 조언을 듣고 한 행동인데 잘한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친구의 얘기가 맞는 걸까요?

저는 안정적인 걸 추구하다 보니까, ‘사귀자’ 같은 확실한 말이나 행동을 하는 누군가가 저를 책임져주길 바라는 것 같아요. 사귀자는 말이 꼭 필요한 건 아닌가요? 주변에선 저한테 ‘밀당’ 좀 하라고 해요. 상대가 좋다고 다 퍼주지 말라고 해요. 주변 사람들의 얘기가 계속 맴돌았어요. 하지만 제 맘대로 안 되네요. 고쳐야 할 점인가요?

저는 주변인에게 의지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한 달 만난 사람이나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사람이나, 전 더 보고 싶었는데, 결국 친구의 말을 들었지요. 결국 제 선택인데 누굴 원망하겠어요. 하지만 타인의 의견을 조언 이상으로 받아들였다는 생각이 들고, 저 자신이 없어지는 기분이 들어요. 그렇다고 제 선택을 ‘쿨’하게 감당하지도 못하죠. 지금, 제 모든 고민이 연애와 관련된 것도 맘에 안 들어요. 제가 원하던 제 모습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는 게 싫고 무서운 것 같아요.

방황에 지친 여자

A 스무 살 즈음에 5년간 사귄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 당신은 아마도 많은 허무함을 느꼈을 겁니다. 20대 초반 전부를 함께 공유했던 사람이 증발한 후의 공허함이란, 아무리 그 사람에게 정이 다 떨어져서 헤어졌다 해도 온전히 나의 감정으로 남게 되지요. 그러니 두 번째 그 사람을 만났을 때 첫 번째보다는 훨씬 뜨겁게 달아오르는 연애를 할 가능성이 커졌을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드디어 내 솔메이트를 만났어!'라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격정적으로 빠져들지만, 그 격정은 자신이 갖고 있던 외로움에 비례했던 것일 뿐일 때가 많거든요. 많이 외로웠던 사람일수록, 쉽게 사랑에 빠져들고, '이번만큼은 진짜일 거야!'라고 쉽게 단정 짓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 한 달 만났다 헤어진 사람과 이별하는 일이 당연히 쉽지 않았겠죠. 너무 짧게 만나서 못 잊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그를 만나기 전에 너무 외로웠고, 지금도 너무 외롭기 때문인 거죠. 어떻게든 이 외로움이라는 감정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 당신은 소개팅도 하고, 술도 마시고, 클럽도 가서 남자를 찾아봅니다. 가장 게으르고 손쉬운 방법들을 택한 거지요. 하지만 잠시 외로움이 잊힐 뿐, 집에 돌아오는 그 순간, 술이 깨는 그 순간 외로움은 두 배로 닥쳐왔을 겁니다. 당연한 결과죠.

모든 결과에는 선행되는 조건이 존재하지 않나요? 당신이 지금 혼란스러움으로부터 빠져나오기 힘든 건, 당신이 '사람은 사람으로 잊힌다'는 매우 흔한 말을 맹신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점점 자신의 모습을 싫어하게 된 건, 외로움을 느끼는 나를 외면하고 내 감정을 부정했기 때문입니다. 당신 스스로가 없어지는 기분이 드는 건, 마치 꼭두각시처럼 주변 사람들의 말대로 행동하며 '누군가가 나를 책임져주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제가 읽었던 책에 이런 내용의 구절이 있었어요. '사람은 눈을 뜨고 있을 때는 마치 눈을 감은 것처럼 살아가고, 눈을 감고 잘 때조차 온전한 휴식에 들지 못한다'는 말이었죠. 저는 당신의 편지를 읽으며 그 구절이 생각났어요.

당신이 꼭 생각해봤으면 해요. 당신은 눈을 뜨고 살고 있지만, 눈을 감고 사는 사람처럼 사는 것 같지 않나요? 친구들의 이야기에 연신 귀를 기울이고, 클럽에서 만난 남자가 나에게 어떤 행동을 하는지 눈치 보고 테스트하는 당신의 모습이 지금 어때 보이나요? 남들의 말과 행동에는 엄청난 주의를 기울이지만, 정작 자신의 외로운 맘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봐준 적이 있었을까요? 내가 내 마음을 알아봐 준 적이 없는데, 내가 내 상태를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는데, 이 상태로 남들의 이야기와 행동에만 모든 주의를 기울이는 삶이 과연 어떻게 흘러갈까요? 당신은 당신의 차가 잘 굴러가길 바라면서, 운전대에는 앉을 생각을 하지 않고 조수석에 앉아 내 삶의 운전대를 누군가가 잘 잡아주길 바라고 있네요.

당신이 원하는 그 안정감이라는 건, 클럽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가 '사귀자'는 말을 통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혼자서도 썩 안정감이 있는 삶이라고 느낄 때 선택한 사람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밀당’을 안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밀당을 해야 네 가치가 올라가는 거야'라고 말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자신이 괜찮은 존재라는 내면의 명료함과 단단함을 가진 사람은 ‘밀당’ 같은 하급의 테크닉 따위로 자기 가치를 보완하지 않습니다. 솔직하게 표현하고, 타인의 거절에도 '당신은 나를 거절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수용하지요. 스물여섯 살, 누군가를 사랑하고 방황하기에도 좋은 때이긴 합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건 나를 책임져줄 남자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하는 선택들의 책임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요? 듬직한 남자가 곁에 있다고 해서 높아진 삶의 안정감이라는 것이, 당신이 인생에서 원하는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요? 진정한 사랑은 자기 자신으로 온전히 존재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면서도 두 사람이 합일감과 친밀감을 느끼는 관계입니다.

지금의 방황을 돌아보고, '이건 아닌 것 같아요'라고 이 편지를 쓴 당신의 그 마음을 기억하세요. 손쉽고 게으르게 외로움을 잊어보려 했던 것도 당신이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아'라고 느끼고 조언을 요청하고 싶었던 것도 당신이니까요. 이런 시간을 어떻게든 잘 감당하며 더 좋은 선택을 하고, 더 성장하는 내가 되고 싶어 하는 당신 내면의 깊은 울림을 존중하세요. 삶에는 언제나 괴로운 일이 등장하지만, 그 괴로운 일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그 이후의 삶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1년 후쯤, 그땐 부쩍 성장한 모습으로 미소 지으며 당신이 보냈던 그 편지를 다시 읽을 수 있길 바랍니다. '내가 그땐 그랬었지'라면서요.

곽정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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